‘초콜릿 위장’부터 ‘팔레트 밀반입’ 마약, 檢에 딱 걸렸다
지난해 7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 초콜릿이 담긴 우편화물이 도착했다. 모든 우편화물은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며 내용물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판독 결과 이 우편물에 든 제품의 음영은 일반적인 초콜릿과 다르며 균일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본부세관은 ‘마약 판독기’로 불리는 이온스캐너 검사를 통해 이 초콜릿이 위장된 마약류 케타민인 것을 알아냈다. 약 1.5㎏(시가 3억7000만원) 분량이었다. 국내에선 동물용 마취제로 사용하는 케타민은 ‘버닝썬’ 등 서울 강남 클럽을 중심으로 유통ㆍ악용되며 ‘성범죄 약물’로 악명을 떨쳤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섰지만, 이 ‘초콜릿’을 받기로 돼 있던 수취인은 이른바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 전화)'을 쓰고 있었고, 이마저 전원을 끄고 잠적한 상태였다. 실마리가 끊기자 검찰은 이 시기 외국인 마약류 유통사건 기록을 통째로 뒤진 끝에 A씨 등 베트남 국적 밀수 사범 3명을 특정해 수사 착수 2개월 만에 재판에 넘겼다.
지난 1월 10일 대구 수성구 한 빌라에 숨겨져 있던 수출입 화물 운반용 팔레트 밑바닥에선 백색 가루가 담긴 비닐봉지 수백개가 쏟아졌다. 주먹만 한 크기 봉투 397개 안에 든 건 필로폰 50㎏(시가 1657억원)으로, 16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단일 적발로 역대 3번째 규모라고 한다. 이 필로폰은 담배 밀수업 총책 B씨를 쫓던 검찰이 그의 은신처를 덮쳤다가 적발했다. 마약 밀반입 조직 일망타진으로 수사 방향을 튼 검찰은 세관 폐쇄회로(CC)TV를 추적해 공범 2명을 추가 적발했다. 마약을 은닉했던 도구를 처리하고 통관 절차를 진행하며 B씨 일당을 도운 또 다른 공범 2명도 붙잡혀 지난 6일 기소됐다.
부서 통폐합, 직접수사 제한 속 꺾인 檢 마약 수사
이들 사건은 모두 부산지검이 검거한 마약사범 사례다. 국내 컨테이너 화물 가운데 76.6%를 처리하는 항만 기능에 김해국제공항, 철도를 갖춘 물류도시 부산은 사실상 마약이 국내로 반입ㆍ유통되는 ‘통로’였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최근 3년(2019~2021)간 국내에서 붙잡힌 마약류 사범의 7.8%는 부산지검에서 검거됐다. 서울중앙지검과 인천·수원지검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특히 부산항은 일본과 브라질·멕시코·콜롬비아 등지를 오가는 마약 ‘경유지’로 악용된다. 2021년 11월엔 부산신항에서 일본을 거쳐온 코카인 400㎏이 적발됐다. 적발된 마약 밀수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만약 시중에 풀렸다면 40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 같은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검은 마약 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대검찰청 강력부는 반부패·강력부로 합쳐졌고, 2020년에는 대검 마약과가 조직범죄과와 통합됐다. 2021년에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마약범죄 범위가 ‘500만원 이상 밀수’로 제한되며 마약 수사 기능이 크게 약해졌다. 수사 제한에 따른 부작용은 바로 나타났다. 10일 부산지검이 만든 ‘마약ㆍ조직폭력 관련 현황 및 성과’ 자료를 보면 2021년 부산지검 마약사범 검거 실적은 634명으로, 2020년(1093명)보다 42.0% 급감했다.
尹 정권 시정에 마수팀 발족 “학교 마약 걱정은 없애야”
부산지검 마약사범 검거는 지난해(726명) 소폭 늘었다. 올 1~3월 사이에는 210명을 검거해 같은 추세가 유지되면 지난해보다 나아질 전망이다. 검찰 내부에선 마약류 밀수ㆍ유통 범행에 대해서는 검찰 직접수사가 가능하도록 대통령령을 개정한 지난해 9월을 ‘터닝 포인트’로 꼽는다.
지난해 12월엔 부산지검 등 전국 6개 지검의 강력범죄수사부가 부활하며 마약범죄 직접 인지ㆍ구속 실적도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원복’ 조치가 이어진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부산지검이 직접 인지· 구속한 마약사범 숫자는 66명으로, 전년 동기(27명)보다 2.4배 늘었다. 지난 2월 20일에는 검사와 마약 수사관, 관세청, 식약처 등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마약 수사특별팀이 출범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일 부산지검을 방문해 “부산 검찰은 마약 잘 잡는 거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평가하며 “부산 검찰이 과거에 이어온 전통처럼 마약을 (다시) 제대로 잡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태와 관련해서는 “학교에서조차 마약 걱정이 일반화되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며 “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 검찰이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