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정부 1년새 급감…부산지검 마약 검거 1093→634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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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콜릿 위장’부터 ‘팔레트 밀반입’ 마약, 檢에 딱 걸렸다

지난해 7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 초콜릿이 담긴 우편화물이 도착했다. 모든 우편화물은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며 내용물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판독 결과 이 우편물에 든 제품의 음영은 일반적인 초콜릿과 다르며 균일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본부세관은 ‘마약 판독기’로 불리는 이온스캐너 검사를 통해 이 초콜릿이 위장된 마약류 케타민인 것을 알아냈다. 약 1.5㎏(시가 3억7000만원) 분량이었다. 국내에선 동물용 마취제로 사용하는 케타민은 ‘버닝썬’ 등 서울 강남 클럽을 중심으로 유통ㆍ악용되며 ‘성범죄 약물’로 악명을 떨쳤다.

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은 지난 2월 21일 16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1657억원 상당의 필로폰 50kg을 태국에서 수출입 화물 운반대(팔레트)에 숨겨 국내로 밀반입한 마약밀수 조직을 적발했다. 사진 부산지검

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은 지난 2월 21일 16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1657억원 상당의 필로폰 50kg을 태국에서 수출입 화물 운반대(팔레트)에 숨겨 국내로 밀반입한 마약밀수 조직을 적발했다. 사진 부산지검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섰지만, 이 ‘초콜릿’을 받기로 돼 있던 수취인은 이른바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 전화)'을 쓰고 있었고, 이마저 전원을 끄고 잠적한 상태였다. 실마리가 끊기자 검찰은 이 시기 외국인 마약류 유통사건 기록을 통째로 뒤진 끝에 A씨 등 베트남 국적 밀수 사범 3명을 특정해 수사 착수 2개월 만에 재판에 넘겼다.

지난 1월 10일 대구 수성구 한 빌라에 숨겨져 있던 수출입 화물 운반용 팔레트 밑바닥에선 백색 가루가 담긴 비닐봉지 수백개가 쏟아졌다. 주먹만 한 크기 봉투 397개 안에 든 건 필로폰 50㎏(시가 1657억원)으로, 16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단일 적발로 역대 3번째 규모라고 한다. 이 필로폰은 담배 밀수업 총책 B씨를 쫓던 검찰이 그의 은신처를 덮쳤다가 적발했다. 마약 밀반입 조직 일망타진으로 수사 방향을 튼 검찰은 세관 폐쇄회로(CC)TV를 추적해 공범 2명을 추가 적발했다. 마약을 은닉했던 도구를 처리하고 통관 절차를 진행하며 B씨 일당을 도운 또 다른 공범 2명도 붙잡혀 지난 6일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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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사건은 모두 부산지검이 검거한 마약사범 사례다. 국내 컨테이너 화물 가운데 76.6%를 처리하는 항만 기능에 김해국제공항, 철도를 갖춘 물류도시 부산은 사실상 마약이 국내로 반입ㆍ유통되는 ‘통로’였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최근 3년(2019~2021)간 국내에서 붙잡힌 마약류 사범의 7.8%는 부산지검에서 검거됐다. 서울중앙지검과 인천·수원지검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특히 부산항은 일본과 브라질·멕시코·콜롬비아 등지를 오가는 마약 ‘경유지’로 악용된다. 2021년 11월엔 부산신항에서 일본을 거쳐온 코카인 400㎏이 적발됐다. 적발된 마약 밀수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만약 시중에 풀렸다면 40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 같은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검은 마약 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 초콜릿으로 위장한 야바 등 마약류 밀반입 시도가 관세청에 적발됐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초콜릿으로 위장한 야바 등 마약류 밀반입 시도가 관세청에 적발됐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대검찰청 강력부는 반부패·강력부로 합쳐졌고, 2020년에는 대검 마약과가 조직범죄과와 통합됐다. 2021년에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마약범죄 범위가 ‘500만원 이상 밀수’로 제한되며 마약 수사 기능이 크게 약해졌다. 수사 제한에 따른 부작용은 바로 나타났다. 10일 부산지검이 만든 ‘마약ㆍ조직폭력 관련 현황 및 성과’ 자료를 보면 2021년 부산지검 마약사범 검거 실적은 634명으로, 2020년(1093명)보다 42.0%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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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검 마약사범 검거는 지난해(726명) 소폭 늘었다. 올 1~3월 사이에는 210명을 검거해 같은 추세가 유지되면 지난해보다 나아질 전망이다. 검찰 내부에선 마약류 밀수ㆍ유통 범행에 대해서는 검찰 직접수사가 가능하도록 대통령령을 개정한 지난해 9월을 ‘터닝 포인트’로 꼽는다.
지난해 12월엔 부산지검 등 전국 6개 지검의 강력범죄수사부가 부활하며 마약범죄 직접 인지ㆍ구속 실적도 크게 늘었다.

지난 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부산지검을 방문해 마약수사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부산지검을 방문해 마약수사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앙포토

이 같은 ‘원복’ 조치가 이어진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부산지검이 직접 인지· 구속한 마약사범 숫자는 66명으로, 전년 동기(27명)보다 2.4배 늘었다. 지난 2월 20일에는 검사와 마약 수사관, 관세청, 식약처 등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마약 수사특별팀이 출범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일 부산지검을 방문해 “부산 검찰은 마약 잘 잡는 거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평가하며 “부산 검찰이 과거에 이어온 전통처럼 마약을 (다시) 제대로 잡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태와 관련해서는 “학교에서조차 마약 걱정이 일반화되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며 “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 검찰이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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