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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400조 돌파" 장밋빛 전망에...尹정부 감세정책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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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국 경제 현안 전문가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뉴스1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국 경제 현안 전문가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뉴스1

올해 거둬들일 세금이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정부 발목을 잡았다. 국세 수입(세수) 실적이 정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면서다. ‘세수 펑크’ 위기에 직면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감세정책과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 축소와 단계적 폐지,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등 검토에 나섰다.

10일 기획재정부 재정정보 공개시스템(열린재정)에 따르면 정부가 예상한 올해 국세 수입은 400조5000억원이다. 부동산ㆍ반도체 호황으로 세금이 유례없이 넘치게 들어왔던 지난해보다 세수 전망을 오히려 높여 잡았다. 정부가 예측한 올해 세수 증가율은 지난해 결산(395조9000억원) 대비로는 1.2%, 본예산(343조4000억원) 대비로는 16.6%에 이른다.

세목별로 올해 소득세는 131조9000억원, 법인세는 105조원, 부가가치세는 83조2000억원 각각 걷힐 것으로 전망했다. ‘역대급’이었던 지난해(소득세 128조7000억원, 법인세 103조6000억원, 부가세 81조6000억원) 수준을 뛰어넘는 액수다.

지난해 8월 당시 올해 예산안과 함께 세입 전망이 발표되자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고금리ㆍ고물가 여파로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한 경기, 연간 13조원에 이르는 감세정책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우려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지적에도 정부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자신했다.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경상성장률을 기준으로 평균적인 (세수) 증가 수준을 담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2%대 실질 경제성장에, 3%대 물가상승 영향까지 더하면 전년(추가경정예산 기준) 대비 1%대 세입 증가율은 무난히 달성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정부 예측은 빗나갔다. 기재부 ‘국세 수입 현황’ 통계를 보면 올 1~2월 국세 수입은 1년 전과 견줘 22.5% 급감했다. 소득세(-19.7%), 법인세(-17.1%), 부가세(-30%) 등 주요 세목 모두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정부 기대와 달리 올 하반기 경기가 반등하지 않으면 400조원 세수 달성은 물 건너간다.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는 기업 실적과 얼어붙은 수출ㆍ내수 경기 탓에 2020년 이후 처음으로 세수가 전년 대비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정부 지출 예산은 세입 전망에 맞춰 짜였다. 연중 구멍 난 세수는 보통 한국은행 일시차입금, 재정증권 발행 등 ‘급전’을 당겨와 막는다. 감소한 세입에 맞춰 올해 지출 예산을 다시 짜는(세입경정) 방안도 있다. 지출을 늘리는 게 아닌 줄이는 방향으로 추경을 편성하는 걸 뜻한다. 세수가 모자란 만큼 나랏빚이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기재부 당국자는 “세수 부족과 관련해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추경 편성은 현재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세수 펑크’는 재정 당국으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2013~2015년 세수 결손 사태가 3년 연속 이어지면서 당시 경제부총리를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정치권에서 거세게 일었던 전례가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윤정부가 강조해온 감세정책과 더불어 건전재정 기조도 위태롭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해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 국세 수입이 연평균 7.6% 늘어난다는 가정 아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50%대 중반 이내로 관리한다는 계획표를 세웠다. 올해 고꾸라진 세입 증가율이 내년 이후 크게 반등하지 않는 한 지켜내기 어려운 목표다.

기재부는 세수 감소 속도를 늦추기 위한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단계적으로 축소ㆍ폐기하고, 종합부동산세 공정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80%로 환원하는 내용 등이다.

다만 이들 조치를 실행한다고 해도 세수 부족분을 다 메우긴 쉽지 않다. 전체 세수에서 종부세와 유류세(교통ㆍ환경ㆍ에너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합쳐 4% 남짓(올해 본예산 기준)에 불과하다. 3대 세목인 소득세ㆍ법인세ㆍ부가세 수입이 회복세를 타야 ‘세수 펑크’를 막을 수 있는데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치가 1%대로 내려앉은 데다 자산시장과 기업 실적, 내수 경기 모두 빠르게 얼어붙고 있어서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내수ㆍ수출 등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 윤정부가 대선 때부터 중요 어젠다로 내세웠던 건전재정 기조가 위태로운 상황”이라면서도 대대적인 감세정책 축소, 증세 전환 같은 ‘경기 역행적’ 수단은 현 경제 상황 때문에 정부가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신 김 교수는 “결국 재정 건전성을 생각한다면 이중 지출이 없는지, 누수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등 지출의 효율성 높이는 방향으로 좀 더 강력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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