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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마음의 ‘배리어 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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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온 세상이 날 거부하는 것 같다.” 며칠 전, 대학 친구 A는 “악플로 왜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알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A는 최근 가족과 방문한 식당에서 출입을 거부당했다. A는 이를 방송사에 제보했고, KBS의 보도로 이어졌다. A가 처음부터 걷지 못한 건 아니었다. 왈가닥 소녀였던 A는 중학생이 되고 자주 넘어지기 시작했다. 근육이 마비되는 사르코마리투스병을 진단받고 학교를 쉬다 전동휠체어를 타게 됐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나와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다. A는 두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해도 PPT와 동영상은 누구보다 잘 만들었다. 우리는 밥과 술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가 공간이 좁으면 다른 식당으로 향한 적도 있다. A는 그때와 이번 출입 거부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역무원에게 안내받는 일본(왼쪽)과 지하철 탑승 중 안전발판이 문에 낀 한국(오른쪽). [사진 서울대 대학신문]

역무원에게 안내받는 일본(왼쪽)과 지하철 탑승 중 안전발판이 문에 낀 한국(오른쪽). [사진 서울대 대학신문]

보도에 따르면 식당 측은 입구 앞 4인석이 비어 있었지만, 전동휠체어가 자리 잡으면 음식을 나르는 카트가 지나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3인 일행이 따로 앉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이를 A 측이 거절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보도 이후 식당주인은 한 커뮤니티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남겼다. 이후 ‘장애인 갑질이다. 장애가 벼슬이냐’는 댓글이 이어졌다. 일부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반감과 불편함을 거론하며 A를 힐난했다. 결국 댓글 창은 닫혔다.

처음부터 출입을 막았다는 A와 식당 측의 진술은 엇갈린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CCTV 영상을 보면 A 측은 식당 입구 앞에 막혀있다. 식당은 설명 의무를 다했다고 하나 A와 가족들은 식당 문턱에서 눈앞에 보이는 공간이 정말 비좁은지 확인할 기회조차 거부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장애인을 정당한 이유 없이 불리하게 대하면 차별이다. 과도한 부담,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다. 전동휠체어가 들어가면 카트는 우회할 수 없나. 음식은 카트로만 날라야 하나. 이는 식당에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었는지 판단할 요소들이다. 국가인권위 등이 차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쟁점이 될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배리어(장벽)를 사람의 도움으로 채워주자는 의미에서 ‘마음의 배리어 프리’란 말을 쓰지만, 이는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올해 ‘시사인 대학기자상’ 수상작 ‘한·일, 어디가 휠체어로 다니기 편할까?’를 보도한 서울대 학보사 카와하라 사쿠라 기자의 말이다. A를 향한 비난을 보며 일단 우리나라에선 ‘마음의 배리어 프리’ 확산이, 한계를 논하는 것 보다 시급해 보였다. 이동권을 위한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없애는 건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언젠가 늙을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는 우연처럼 찾아와도 노화는 필연적이니까.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에는 각자 마음의 장벽을 돌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