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中企로 간 '미생2'..."스스로 멱살잡고 끄는게 장그래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생' 시즌2를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윤태호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생' 시즌2를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윤태호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바둑은 1대 1 시합이에요. 나이가 많든 적든 자기가 판단하면서 스스로를 리드할 수밖에 없죠. "

중소기업 무대로 시즌2 연재중 #단행본도 4년만에 제15권 나와 #

 '미생' 시즌2를 연재 중인 윤태호(54) 작가의 말이다. 그는 "흔히 리더십을 강한 사람 하나가 앞에서 끌고, 여러 사람이 그 줄을 잡고 끌려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스스로 자기 멱살을 잡고 앞으로 가는 거, 어떤 일을 해야 되는 지 분명히 알고 스스로 추동하는 거"라며 "장그래는 그런 점에서 훈련이 매우 잘 돼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웹툰 연재와 함께 지난달 4년만에 단행본『미생』의 15권째 책을 낸 그를 만났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의 고졸 청년 장그래가 대기업 종합상사에 속칭 '낙하산' 인턴으로 입사해 계약직으로 일하는 과정이 시즌1(단행본 1~9권)이었다면, 시즌2의 장그래는 새 직장에서 일한다. 대기업 시절의 직속 상사 '오과장'(오상식, 현재 부장) 등이 만든 무역회사 '온길'이다. 지금 직원은 7명, 중소기업 중에도 작은 회사다.

 윤 작가는 "생존을 해야 하는 게 핵심"이라며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나 무보(무역보험공사)를 찾아가 보니 직원 3, 4명인 회사가 정말 많더라"고 전했다. 그는 "시즌1이 개인의 미생(未生, 바둑에서 '완생'과 달리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히 살아 있지 않은 상태) 이야기였다면, 시즌2는 여러 사람이 속해 있는 회사 자체가 미생"이라고 전했다.

새로 출간된 '미생' 15권.

새로 출간된 '미생' 15권.

 회사 규모는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과도 관련 있다. "중소기업에서 사장님이 '야, 너는 몰라도 되니까 일단 나를 믿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하는 건 아주 옛날 방식이죠. 일의 전체 사이즈를 모르면 자율성이 없어요." 그는 "요즘은 정보를 평등하게 공유해주는 게 리더십의 1번 같다"며 "아무리 말단이라도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공유를 해주고 '너는 말단이니 네가 책임질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식이 돼야 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만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는 "미국 대기업 아마존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세팅하는 팀의 단위가 '피자 두 판'이라고 하더라"며 "피자 두 판을 나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면 누구 한 명이 정보를 독점하거나 하는 일 없이 정보의 쏠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온길'은 사내에 "한가한 정치싸움" 같은 건 끼어들 틈 없는 조직, 한편으로 "내 월급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환히 보이는 조직이다. 말단으로 합류한 장그래 역시 제 월급값을 해야 한단 생각에 고민이 많았는데, 점차 그다운 활약이 또렷해진다. 특히 최근 난생처음 해외출장을 떠난 요르단에서는 장그래 특유의 예리한 안목과 집요함이 단연 빛을 발한다.

 이런 웹툰 속 시간과 달리 웹툰 밖 시간은 시즌2 시작 이후 벌써 7년여가 흘렀다. 시즌1처럼 주 2회가 아니라 1회 연재인 데다, 윤 작가의 팔 근육 부상과 다른 작품들 연재로 두 차례 도합 4년 휴재를 한 결과다. 다행히 그의 통증은 나아졌고, 시즌2는 전체 3부 중 현재의 2부 '출장'에 접어들며 한결 탄력과 속도가 붙었다.

'미생' 시즌2를 웹툰으로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윤태호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생' 시즌2를 웹툰으로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윤태호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 사이 그의 말마따나 10대, 20대 때 드라마 '미생'이나 시즌1을 본 이들이 20대, 30대가 된 터. 그는 기업 문화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변화도 지적했다. "시즌1같은 분위기로 뭘 묘사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가 된다"며 단적인 예로 든 것이 시즌2에서 임원이 회의하다 서류를 위로 집어 던지는 장면이다. "요즘은 그러면 '괴롭힘'이라고 하더라고요. 댓글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그 장면 보고 감동 받아 실제 그러는 임원이 있을까 봐 걱정된다는 댓글도 있었죠." 그는 "노티(나이든 티) 나는 대사, 예를 들면 설명을 하는 대사인데 지적하는 듯한 톤이 나오면 뜨끔해서 훌렁 지워버린다"고도 했다.

 '미생'은 진작부터 댓글도, 명대사도 유명했던 터. 하지만 그는 "통찰은 독자한테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대사 등에서 작가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확장하는 것이 독자다. "그래서 독자가 무섭죠. 작가가 '내 캐릭터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해요. 특히 '미생' 같은 장기 연재에서는."

 그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클라이맥스는 "사건의 사이즈가 아니라 인물의 폭발"이라는 지론도 들려줬다. "인물의 인식이 폭발해 한 계단 성장할 때, 사건은 사사로울수록 빛나죠. 우리 인생이 그렇듯 주인공의 성장은 스스로 여지를 만들어줘야 해요. 바라던 조건과 상황이 됐을 때, 폭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조무래기가 되거나 찌질해지는 사람도 있죠."

 시즌2의 3부는 '결혼'. 달달한 연애가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을 취재해 그 고민을 다룰 예정이다. 작가가 염두에 두는 건 장그래와 인턴 동기들만이 아니다. 대기업 시절부터의 선임도 있다 "김동식 과장(시즌1에서는 대리)도 장가 보내야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