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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갈아넣는' 소모전, 애국심도 동났다…우크라 병역기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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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된 동·남부 지역과 크림반도를 탈환하겠다며 이르면 이달 안에 반격을 예고하면서 서방이 지원하는 전차와 탄약 등도 속속 보강되고 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점령지에 지뢰를 매설하고 참호를 파는 등 방어 태세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봄 공세에서 싸워야 할 양측의 병사들은 전쟁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사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애국심 사라진 우크라군, 병역 기피 심각  

우크라이나 군인이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 전선에서 참호에 앉아 전투에 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이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 전선에서 참호에 앉아 전투에 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애국심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보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오랫동안 전장에서 죽음과 폭력을 경험하면서 많이 지쳐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4일 전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특히 최근 치열한 격전지로 떠오른 바흐무트에서 10개월 넘게 소모전이 펼쳐져 우크라이나군도 심각한 손실을 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심리적 동요가 커진 것으로 관측된다. 바흐무트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한 하사는 “감정이 계속 흔들린다.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에는 우크라이나 제46 공중강습여단에서 전투대대장을 맡았던 아나톨리 코젤 중령이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신병들이 투입돼 대부분 죽거나 다쳤다는 실상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이들은 전투 경험이 없어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고 한탄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달 31일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의 공동묘지에서 동부 전선에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 관 옆에 서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달 31일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의 공동묘지에서 동부 전선에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 관 옆에 서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같은 사기 저하는 징병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말 러시아가 막 침공했을 때는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신병 모집소에 줄을 섰지만, 이후 다수가 죽거나 다치면서 군 소환장을 거부하거나 징집이 될까봐 공공장소를 피하는 남성들이 크게 늘었다.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수천 달러 뇌물을 주고 의사에게 진단서를 받거나 수만 달러를 들여 자원봉사 구호 인력인 것처럼 신분을 위조해 폴란드 국경을 넘어가는 사례도 있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2월 “병역 기피가 현재 심각한 문제”라고 인정했다. 

신병 모집은 줄고 병력 손실은 증가하면서 갓 입대한 병사들은 훈련 며칠 만에 최전선에 투입되고, 그로 인해 사상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서방 정보기관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개전 직후 총동원령을 내려 약 14개월 동안 훈련 병력을 포함해 약 90만명을 소집했고, 그중 사상자 규모는 약 16만명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싱크탱크 정치연구소의 루슬란 보르트닉 소장은 병역 기피 현상에 대해 “비용 절감 조치로 전선 밖에 있는 병사들의 보너스를 삭감하고, 탈영과 불복종에 대해 더 가혹한 처벌을 도입하는 등 우크라이나 군대 상황이 열악해진 영향도 크다”면서 “전쟁터에서 사상자가 더욱 많아지고 병사들의 불만이 계속 커진다면, 전쟁이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러군, 이미 사기 떨어졌는데 월급도 없어

군 동원령으로 징집된 한 러시아 신병이 지난해 10월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주(州)의 한 사격장에서 군사훈련 중 탄약을 운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군 동원령으로 징집된 한 러시아 신병이 지난해 10월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주(州)의 한 사격장에서 군사훈련 중 탄약을 운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군은 고질적인 병참 문제와 강제적인 군 동원령 등으로 우크라이나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사명감이 떨어졌는데, 최근에는 월급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사기가 더욱 저하된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독립 매체 베르스트카에 따르면 올 초부터 러시아군인들에게 월급이 지연 입금되거나 아예 지급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 대표 소셜미디어(SNS)인 브콘탁테에는 최근 “내 동생은 두 달 동안 급여를 받지 못했다”, “국방부에 문의하니 남편이 임금 지급 대상자 명단에 없다고 한다”등 군인 가족들의 불만 글이 많이 올라왔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남편은 지난해 9월 동원령으로 징집됐는데, 올 1월부터 급여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모스크바 인근의 이바노보주(州)에 사는 한 여성도 “지난해 동원된 지인 중 일부는 월급은 받고 있지만, 약속보다 한참 낮은 월 7000~1만5000루블(11만~25만원)만 들어온다”고 전했다.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러시아군인의 경우 첫 월급이 약 19만5000루블(320만원)로 러시아 주둔 군인의 평균 월급보다 14배 가량 많다. 그 외 전투 수당 등이 추가되지만 수당 금액과 청구 방법 등이 공개되지 않아 실제로 지급됐는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 전시된 군 모집 광고판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 전시된 군 모집 광고판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병사 어머니 위원회를 이끄는 발렌티나 멜니코바는 “러시아군 관료제가 동원령으로 급증한 새로운 군 체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개전 이후 부분 동원령으로 모집한 30만명을 포함해 약 60만명 병력을 투입했는데 사상자는 약 20만명으로 추정된다. 

악화한 러시아 경제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자유유럽방송(RFE/RL)은 러시아 국방부가 징집된 남성에게 보온 속옷, 방탄복, 의료용품 등을 개인적으로 구매해 가져오라고 했다며 러시아 군대가 현재 매우 열악하다고 전했다. 한 러시아 네티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무임으로 전쟁터에 끌려가고 있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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