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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중과실 있어야 배상" 위헌 심판, 헌재서 각하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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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법을 위반하더라도 '중과실'이 없으면 국가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현행 대법원 판례를 두고 제기된 위헌법률심판이 본안 판단 없이 종결됐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서울중앙지법 민사211단독 서영효 부장판사가 제청한 국가배상법 2조 1항 본문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을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지난달 23일 각하했다. 각하는 본안에 대한 판단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절차다.

이 사건의 신청인인 전상화 변호사는 과거 자신이 수임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법률 적용을 잘못해 패소 판결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며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국가배상법 2조 1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나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정한다.

법원은 그러나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국가배상 책임을 엄격하게 해석해 1∼3심 모두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법관의 잘못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려면 '중과실'이 입증돼야 한다는 판단을 여러 차례 내렸다.

이에 전 변호사는 재차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대법원이 법 조항에 없는 '위법·부당한 목적이나 중과실 유무'를 입증하도록 요구한 현행 판례가 잘못됐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서 부장판사는 '일반 공무원의 직무집행과 비교해 법관의 재판상 직무 행위에만 일종의 특전을 부여하는 것으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전 변호사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헌재는 그러나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은 현행 규범 통제 제도에 어긋나 허용될 수 없다"며 서 부장판사의 제청을 각하했다.

헌재는 "대법원은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 된 사안에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고의 또는 과실, 법령 위반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일 뿐"이라며 "새로운 성립 요건이 가중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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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조항 자체가 아닌 법원의 해석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한정위헌)하려면 일정한 요건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법원의 해석이 법률 조항의 적용 등을 실질적으로 규율하는 경우인데, 헌재는 이 사건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문형배 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제청 자체는 적법해 본안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문형배 재판관은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넓게 인정하면 법관이 그것을 의식해 소신에 따른 판결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실질적으로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의 책임은 보다 엄격히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지난달 7일 유사한 취지의 헌법소원도 청구했다. 헌재는 이를 본안 심판에 회부해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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