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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재직 중 혼전출산 '유스퀘이크'…이젠 '온라인 폭력' 맞선다

중앙일보

입력

저신다 아던(43) 전 뉴질랜드 총리가 온라인 극단주의 콘텐트를 척결하기 위해 만든 협약체 '크라이스트처치 콜'에 특사로 합류했다. 그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 '어스 샷'에 이사도 맡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저신다 아던(43) 전 뉴질랜드 총리가 온라인 극단주의 콘텐트를 척결하기 위해 만든 협약체 '크라이스트처치 콜'에 특사로 합류했다. 그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 '어스 샷'에 이사도 맡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뉴질랜드 역대 최연소 총리, 재직 중 혼전 출산, 강력한 총기 규제 정책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저신다 아던(43)이 사임 세 달만에 첫 공식 행보에 나섰다.  '저신다 마니아' 층까지 형성한 이 젊은 여성 정치인의 다음 행보는 큰 관심사였다. 그의 선택은 온라인 폭력 콘텐트를 척결 및 환경 보호. 관련 단체인 '크라이스트처치 콜'의 특사,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 '어스 샷'의 이사직을 맡았다. 5일 (현지시간) 가디언은 "사임 발표 뒤 모든 인터뷰를 거부하고 조용히 결정한 행보"라고 전했다.

크라이스트처치 콜은 2019년 3월 뉴질랜드의 이슬람 사원에서 백인우월주의 세력이 총기로 51명을 살해한 뒤 생긴 협의체이자 서약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명에서 이름을 따왔다. 당시 범인들은 범죄 현장을 인터넷에 17분간 생중계했고, 이후 복사본까지 돌면서 소셜미디어(SNS) 등 플랫폼이 폭력적인 콘텐트 확산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아던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서약을 만들었고, 이후 뉴질랜드·한국·미국·영국·프랑스 등 50여 개국과 메타·아마존·구글·유튜브 등이 협의체에 가입했다. 당시 아던 총리는 무슬림 히잡을 쓰고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무슬림 증오 범죄 발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2019년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두 곳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해 51명이 숨졌다. 체포된 용의자 중 한 명은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으로 총격 과정을 중계해 큰 충격을 줬다. AP=연합뉴스

2019년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두 곳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해 51명이 숨졌다. 체포된 용의자 중 한 명은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으로 총격 과정을 중계해 큰 충격을 줬다. AP=연합뉴스

CNN은 "후임인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가 아던에게 합류를 요청했다"며 "아던은 이달부터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할 것"이라고 전했다. 올해 말부턴 특사로서 국제회의 등에도 파견될 것으로 보인다. 아던은 "여전히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지역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낀다"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던이 이사로 합류한 '어스 샷'은 2020년 영국 윌리엄 왕세자가 만든 상의 이름이자 단체다.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를 해결할 창의적인 방법을 내는 과학자 등을 5명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상금은 한 명당 100만 파운드(16억 4200만원)에 달한다.

윌리엄 영국 왕세자(왼쪽)와 저신다 아던 총리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홍이' 방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윌리엄 영국 왕세자(왼쪽)와 저신다 아던 총리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홍이' 방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던이 어스 샷에 합류한 건 윌리엄 왕세자와의 인연 덕이었다. 아던은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어스 샷 혁신 간담회에 윌리엄 왕세자 대신 참석해 연설을 했다. 당시 윌리엄 왕세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뒤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어스샷 상의 이름이 정해지기 전부터 저신다에게 조언을 구했다"며 "그가 경력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순간 우리와 함께해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37세에 총리직에 오른 아던은 '유스퀘이크(youthquake·젊음과 지진의 합성어)'를 일으킨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임기 약 5년 동안 파격적인 행보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국민의 큰 신임을 얻었다. 2018년 6월엔 함께 살던 남자친구 클라크 게이포드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6주간 출산 휴가를 다녀왔고, 약 3개월 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UN) 총회에도 모유 수유를 위해 딸과 아이 아빠와 동행했다.

2018년 아던의 연인 클라크 게이포드가 3개월 된 딸과 함께 유엔(UN) 총회에 동행한 모습. AFP=연합뉴스

2018년 아던의 연인 클라크 게이포드가 3개월 된 딸과 함께 유엔(UN) 총회에 동행한 모습. AFP=연합뉴스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사건이 발생한 뒤엔 직접 히잡을 쓰고 유족을 위로하고, 강력한 총기 규제 정책을 내놓으면서 찬사를 받았다. 전 세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때도 국경 봉쇄, 이동 제한령 등을 신속하게 지시해 비교적 큰 피해를 막았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2020년 총선에서 아던이 속한 노동당이 전체 120석 중 64석을 얻으면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1월 그는 "에너지가 고갈됐다"며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고물가·저성장 추세에 노동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예견된 수순이란 평이 나왔다. 앞서 국회에서 야당인 행동당(ACT)의 대표 데이비드 시모어에게 "오만한 멍청이(arrogant prick)"이라고 한 말이 마이크를 통해 흘러 나온 '핫 마이크' 사건으로 타격을 입었다. 아던은 사임을 발표하며 당시 현장에 있던 연인에게 "드디어 우리도 결혼식을 올리자"고 공개 프러포즈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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