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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1호 유죄…‘경영 리스크’ 현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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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대재해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 회사 대표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회사 대표에게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징역형의 1심 결과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6일 중대재해법 위반(산업재해 치사)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에 벌금 3000만원을, 회사 대표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공사현장 안전관리자에게 벌금 5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또 온유파트너스 하청업체인 아이코닉에이씨 법인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원·하청 현장소장 두 명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계는 이날 원청업체 대표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집행유예라고는 하지만 징역형의 일종인 만큼 기업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청업체의 대표이사까지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가중처벌한 것인데, 기업인의 경영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선 ‘사업을 접을 고민까지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원한 한 재계 관계자는 “법 제정 당시 우려했던 것처럼 위험 책임자의 범위가 모호하지만 원청업체 대표에게 결국 책임을 물었다”고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원청은 하청업체에 대해 구체적인 지휘·감독이 불가능한데, 법원이 그에 책임을 지운 만큼 향후에도 문제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5월 온유파트너스가 진행하던 경기도 고양시의 한 요양병원 증축 공사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사고를 당하면서 불거졌다. 온유파트너스 대표는 원청회사인데도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이행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기소됐다.

이날 1심 선고에서 김 판사는 “회사가 안전대 부착, 작업계획서 작성 등 안전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했다”며 “피고인들이 업무상 의무 중 일부만 이행했더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총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적용 땐 대비 못할 듯”

그러면서 김 판사는 “다만 건설노동자 사이에서 만연한 안전 난간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사망사고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며 “이 책임을 모두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유족에게 진정 어린 사과와 함께 위로금을 지불하고,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피고인 측은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들이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고, 유족 측과 합의했기 때문에 항소 여부에 대해 천천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이날 판결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중대재해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진 것은 원청 대표이사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데, 기존의 산업안전법 위반 선고와 형량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그룹 회장에게까지 확장하는 추세다. 의정부지검 형사4부는 지난달 31일 중대재해법 1호 사고였던 양주시 채석장 붕괴사고와 관련해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을 불구속기소 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29일 중대산업재해를 대비한 매뉴얼 마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검찰은 정 회장이 안전보건업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고받으며 실질적이고 최종적 결정권을 행사한 점 등을 고려해 ‘경영책임자’ 범위에 포함했다.

지난해 1월 27일 시행에 들어간 뒤 지금까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14건이 재판에 넘겨졌다.

경총은 “내년 중대재해법 대상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면 기업들이 이를 대비할 여력이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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