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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봉작만 90편인데…극장엔 한국영화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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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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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①)’와 ‘스즈메의 문단속(②)’의 잇따른 흥행,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 물의 길(③)’ 등 한국 영화계는 남의 나라 영화의 잔치를 지켜보기만 하는 신세가 됐다. 극장 관객수 회복 또한 더디기만 하다.

지난 3월까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집계된 올해 극장 관객수는 2514만7858명으로, 2019년 동기간(5507만1869명) 대비 절반에 못 미치는(45.7%) 수준이다. 한국영화 대작이 실종된 탓이다. 업계에 따르면, 다 만들어 놓고도 개봉일을 못 정한 한국영화가 90여편에 이른다. 관객들은 볼 만한 한국영화가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영화사들은 관객이 줄어 개봉을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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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흥행 공식을 분석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인 제작사 하하필름스 이하영 대표는 “올해 연간 관객수가 지난해처럼 1억명 대에 머물면, 투자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시장 자체가 축소된 채로 고착화할 수 있다. 결국 한국영화 시장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론을 내놨다. 지금보다 한국영화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대작들이 왜 극장에 선뜻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당장 4월은 CJ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3사가 지원금을 얹어주는 전략으로 ‘리바운드’(5일 개봉), ‘킬링 로맨스’(14일 개봉), ‘드림’(26일 개봉) 등 한국영화 3편의 개봉을 끌어냈지만 한국영화 보릿고개를 끊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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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편이 천만 흥행을 거둔 ‘범죄도시’ 3편(5월말 개봉), 류승완 감독의 범죄영화 ‘밀수’(여름 개봉 예정), 광복 직후 국제 마라톤 대회 실화를 그린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추석 개봉 예정) 외엔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한 작품이 대다수다. 송중기 주연의 범죄 영화 ‘보고타’, 김용화 감독의 SF ‘더 문’, 김태용 감독의 SF ‘원더랜드’, 라미란 주연 코미디 ‘시민 덕희’ 등 화제작들도 개봉 일정을 못 잡았다.

영화계는 OTT로 직행하는 콘텐트가 늘어난 것 만큼이나 ‘홀드백’이 붕괴한 것도 극장 정상화를 늦추고 있는 요인으로 본다. 홀드백은 극장 상영이 끝난 후 다른 플랫폼 출시까지 걸리는 기간을 뜻하는 말로, 관행적으로 45일이 지켜져 왔지만, 팬데믹 이후 짧으면 2주, 길어도 한 달 정도로 줄었다. 이에 따라 관객들의 관람 습관도 바뀌었다. 극장에 안 가도 조금만 기다리면 OTT로 개봉작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범죄도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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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제작사 관계자는 “OTT가 투자·배급사로부터 100억대 작품을 구매할 때 다른 작품까지 패키지로 계약하며 홀드백에 관한 조건을 내건다고 들었다”면서 “당장 자금을 회수해 회사를 굴려야 하기에 거절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홀드백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팬데믹 기간 세 차례 오른 극장 관람료 인상 또한 극장 정상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운영난을 겪는 극장들에겐 자구책이 됐지만, 가격 부담으로 인해 관객이 줄고 영화에 대한 평가가 더욱 박해졌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 대작이 극장에 대거 돌아오기까진 시간이 걸릴 거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인상된 극장 관람료를 낮추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극장가 회복의 바로미터가 될 ‘범죄도시3’의 흥행성적을 본 뒤 묵혀둔 자사 영화들의 배급을 결정하겠다는 투자배급사들이 관망세 때문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 SF 영화 ‘승리호’(2021)를 넷플릭스로 공개한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 정근욱 부사장은 “극장의 큰 화면에서 관람 못한 건 아쉽지만, OTT 출시로 팬데믹 기간 많은 대중이 ‘승리호’를 봤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디즈니플러스 등 다른 OTT 작품도 하게 됐다”면서 “드라마와 영화는 제작 시스템, 소비 패턴이 다르니까 하이브리드로 섞이면 장기적으로 콘텐트가 다양해지는 긍정 효과가 있지 않겠나. 꼭 한쪽의 손해라는 생각은 안 든다”고 했다.

오히려 도전에 나선 회사들도 있다. 지난해 출범해 영화 ‘동감’ ‘데시벨’ 등을 꾸준히 선보인 신세계 계열의 신생 투자·배급사 ‘마인드마크’, 제작에서 투자·배급업까지 확장한 ‘바른손이앤에이’ 등이다. 바른손이앤에이의 경우 제작 작품 ‘기생충’(2019)으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경험을 바탕으로 어려운 국내 시장을 보완할 수 있는 해외 시장 개척에 신규 투자·배급 사업의 초점을 맞췄다. 바른손이앤에이곽신애 대표는 “코로나 상황으로 어렵지만 한국영화만의 경쟁력이 있다. 세계적 수준의 스태프, 산업 인프라가 한순간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해외로 시장을 확대해갈 수 있도록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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