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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직불금 5조로 늘리고, 쌀 대신 밀·콩 재배 유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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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법안의 공식 명칭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양곡관리법’이란 표현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 대신 정부 실무자부터 장관과 국무총리, 윤 대통령까지 모두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 부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부에선 이미 용어 통일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지난 4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강제매수법’은 윤 대통령이 참모와의 회의에서 “법안의 본질을 알려야 한다”며 고안한 표현이라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양곡관리법이라 말하면 국민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법안을 보고받은 뒤 ‘사실상 강제 매수하라는 뜻 아니냐’며 강제매수법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달 29일 대국민 담화뿐 아니라 4일 야당 의원과의 대정부 질문에서도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설전을 벌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호 민생 법안’인 양곡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보다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모두 사들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만 보면 ‘조건부 매입’이란 표현이 더 정확해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미 매년 5% 이상 쌀이 남는 만성 공급 초과 상태”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무조건 쌀을 매수할 수밖에 없다. 법안 속 숫자는 눈속임에 가깝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같은 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남는 쌀 강제매수법’ 대신 사전에 쌀 생산량을 조정하는 제도를 추진하기로 했다. 전략작물 직불제(생산자의 소득을 보조해 주는 금액) 확대 개편안이다.

또 올해 2조1900억원으로 편성된 농업 분야 직불금을 5조원으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리는 6일 쌀값 안정화 민·당·정 협의회에서 이런 방침이 발표된다.

전략작물 직불제는 논에 콩·가루 쌀·조(粟)사료 등을 재배할 경우 헥타르(ha)당 50만~48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밀·콩과 같이 수입에 의존하는 작물의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구조적 과잉인 벼 재배를 줄여 만성적인 쌀 수급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책 성공의 관건은 재배 품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양수 의원은 통화에서 “농업인들이 밀가루 대용품인 가루 쌀로 품종을 전환할 경우, 이렇게 생산된 가루 쌀을 우리나라 제빵업계가 거의 전량을 매수해 활용할 수 있도록 민·정 협의도 활발히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도 2018~2020년 유사한 정책인 ‘논 타 작물 재배지원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인센티브가 부족해 농업인들의 참여가 저조했고, 결국 기획재정부로부터 2021년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 채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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