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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직위' 46명 파견한 금감원...은행권 대출제도 점검도 소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감독원이 지방자치단체에 파견한 직원의 업무실적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자체 파견자 1인이 1년에 작성한 보고서가 평균 0.47개 수준일 정도로 업무 자료가 부실하고, 국장급·팀장급 ‘유사 직위’를 부여받은 파견 직원 46명을 초과 운영했다. 또 은행들이 소비자의 권리 행사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것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연합뉴스

파견 직원, 연평균 0.48개 보고서 작성 

감사원은 금감원에 대한 정기감사에서 2019~2022년 6월까지 감독 당국이 지자체에 파견한 86명의 업무실적과 복무실태를 점검한 결과, 지자체 파견자 1인이 1년에 작성한 보고서는 평균 0.48개 수준에 불과했다고 4일 밝혔다.

감사원은 “금감원은 감사원이 업무실적 자료를 요청한 데 대해 ‘파견자들이 구두로 금융자문 등을 수행하고 있어 이를 증빙하는 문서는 없다’라는 답변과 함께 3쪽 분량의 가상자산 보고서 등 총 41개의 보고서를 제출했다”며 “이마저도 동향보고자료, 정책자료 등 파견된 지자체에 특화된 자문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다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금감원은 강원도지사의 금융정책 보좌·자문 목적으로 직원을 파견했음에도 지난해 9월 채권시장의 파장을 일으킨 레고랜드 사태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국내 채권 신용도가 폭락해 금융시장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그러나 강원도지사 자문을 위해 파견된 금감원 직원은 올해 1월 감사원에 “(채무불이행 선언) 발표 이전까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 계획과 관련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관련 자문을 제공한 사실도 없다”라고 답변했다.

감사원은 “금감원 직원은 사전에 관련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언을 요청받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파견자의 역할 및 필요성이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강원 춘천에 있는 레고랜드 테마파크가 재개장에 들어간 뒤 첫 휴일을 맞은 지난달 26일 파크 주변에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강원 춘천에 있는 레고랜드 테마파크가 재개장에 들어간 뒤 첫 휴일을 맞은 지난달 26일 파크 주변에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세 차례 지적에도...유사 직위 5개 늘어 ‘46개’

그간 유사직위를 두지 말라는 감사원의 지적이 2009년, 2015년, 2017년에 걸쳐 세 차례나 있었음에도 오히려 이 같은 자리를 5개 늘려 46개의 유사직위를 운영한 것도 문제가 됐다. 금감원은 지자체에 직원들을 파견하면서 ‘대외관계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식 직위가 아닌 국장급·팀장급의 유사 직위를 부여해왔다.

감사원은 금감원에 유사직위는 폐지하고 복무 불량이 확인된 직원 5명은 징계 등 인사 조치 하라고 통보했다.

은행권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도 無

일부 은행이 예금자 관련 비용인 예금보험료나 지급준비금을 대출자의 가산금리에 반영하는데도 금감원이 이를 막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은행들은 2017~2021년 예금보험료 3조4000억원, 지급준비금 1조2000억원을 ‘법적 비용’ 명목으로 대출해 가산금리에 반영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뉴시스

감사원은 “예금보험료와 지급준비금은 예금성 상품을 위한 비용”이라며 “금감원은 은행의 자율성 존중 등을 이유로 기준금리, 예금보험료, 지급준비금 비용의 부적정한 반영을 분석·점검하거나 조치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대출받은 사람이 재산이 늘어나거나 신용점수가 올라 은행에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제도에 대해 은행들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운영함에도 금감원이 실태점검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은행은 대출자가 소득이 늘어났다 해도 다른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늘어난 소득으로 반영하지 않는 등 소비자 권리 행사를 제약하고 있었다.

이외 한 증권사가 사실상 똑같은 펀드를 투자자 49인 이하로 ‘쪼개기 발행’한 것을 제재하지 않은 점, 검사·감독업무를 할 때 적법절차 없이 디지털포렌식을 진행하고 있는 점 등도 문제가 됐다.

감사원은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직․예산 운영의 개선, 미비한 규정 보완, 부당하게 업무를 수행한 관련자의 문책을 요구했다”며 “이를 통해 금감원이 조직·예산운영의 효율성을 한 단계 높이고, 금융감독·검사기관의 역할을 보다 공정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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