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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청댐 도착때까지 살아있었다…의식 잃자 "묻어버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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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납치 차량이 대청댐에 도착한 새벽 3시 무렵까지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의자들은 인적이 드문 대청댐 인근에서 피해자를 결박한 채 코인 등 금품을 내놓으라고 30분 이상 협박하다 피해자가 숨지자 시신을 매장한 채 도주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납치를 실행한 피의자 황모(36)씨와 연모(30)씨는 지난 29일 오후 11시 46분 서울 강남에서 피의자를 납치한 뒤 경기도 용인시로 이동해 공범인 이모(35)씨를 만났다. 피해자의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이들이 대전 대청댐 인근에 도착한 건 30일 오전 3시쯤으로 추정된다.

황씨 등은 인근에 차를 세워둔 채 약 30분 이상 코인이나 현금 등이 있는 계좌 정보를 알려달라고 피해자를 협박했다. 이 과정에서 마취제가 든 주사기를 수차례 사용하는 등 살해 위협을 했고, 결국 피해자는 의식을 잃었다. 이에 당황한 황씨와 연씨는 대포폰을 사용해 범행을 계획한 이모(35)씨와 통화를 하며 이 사실을 보고했지만, 이씨는 “(피해자가 먼저 알려준 계좌에는) 돈이 없는 것 같다. 그대로 묻어버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이 당시 전국 차량 수배시스템에 범행 차량을 등록한 건 차량 번호를 인지하고 4시간쯤 지난 30일 오전 4시 53분이었다. 일각에선 피해자의 생존 시간을 고려했을 때, 경찰 대응이 더 빨랐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대응 과정에 대해 살펴볼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사안이 중요하고 복잡해 사안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사안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남 40대 여성 납치살인 사건 용의자 이모씨가 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남 40대 여성 납치살인 사건 용의자 이모씨가 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범행 전 피의자들이 2~3개월간 피해자를 미행하며 주거지 인근에서의 납치 뿐 아니라, 플랜B나 플랜C 등 여러 범행 시나리오를 논의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피해자의 별장까지 미행했던 이들이 “별장 인근은 인적이 드무니 흉기를 준비해 별장에 갔을 때 납치해서 돈을 빼앗자”거나 “피해자 부부가 함께 있을 때는 납치하기 어려우니 고의로 교통사고를 크게 낸 뒤 납치하자”는 등의 범행 계획도 고려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계획들은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정한 이씨가 대부분 주도해서 제안했다고 한다.

이씨는 검거 이후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지만, 이씨의 주변에 따르면 범행 몇 개월 전부터 지인들에게 급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이씨는 2020년쯤 운영 중이던 피트니스 센터가 망한 뒤 코인 투자자로 전향했고, 이후 대출을 받거나 자녀들의 보험을 해약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수천만원을 모아 ‘P코인’ 등에 투자했으나 결과적으론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처음 알게 돼 지난 2021년 3월에는 P코인 관련 형사 사건에 피해자와 함께 연루되기도 했다. 이후 이씨는 피해자의 회사에서 일하며 주변에 회사 중역인 것처럼 자신을 소개했고 피해자로부터 2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와 사이가 벌어지며 다시 생계가 어려워진 이씨에게 이번 범행의 ‘윗선’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유모ㆍ황모씨 부부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다니던 법률 사무소를 소개해준 것도 유씨 부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의 새 직장 생활도 3~4개월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이씨의 지인은 “최근 이씨가 지인들에게 ‘돈만 준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닌 걸 들었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 부부가 이씨에게 착수금 4000만원을 주고 범행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출국 금지 조치했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오는 5일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피의자들에 대한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연씨·황씨·이씨를 구속한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들과 함께 미행 등을 벌이며 범행 준비 과정에 참여한 20대 남성 A씨에 대해 강도예비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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