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망가고 싶었다"…천하의 조승우 떨게한 저주받은 '유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초대형 샹들리에 무게 1t, 파리의 문화 전성기인 19세기 벨에포크 시대를 구현한 220벌의 오페라 의상, 37년간 계속된 런던 웨스트엔드 초장기 베스트셀러 공연, 전 세계 관람객 1억 4500만 명.

설명이 필요 없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수식하는 숫자들이다. 압도적인 무대와 극적인 구성, 중독성 강한 멜로디로 세계 뮤지컬 팬들을 사로잡아 온 '오페라의 유령'이 부산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13년 만에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다. 그런데 배우 조승우가 주인공 유령, 팬텀 역을 맡았다. '오페라의 유령'과 국내 뮤지컬 최고의 흥행 카드 조승우의 결합이라는 점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은 설렌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유령이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데리고 호수를 건너 자신의 지하 미궁으로 향하는 장면. 오페라의 유령 명작면으로 손꼽힌다. 사진 에스앤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유령이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데리고 호수를 건너 자신의 지하 미궁으로 향하는 장면. 오페라의 유령 명작면으로 손꼽힌다. 사진 에스앤코

지난 1일 오후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열린 '오페라의 유령' 공연은 조승우의 이름값이 거저 생긴 게 아님을 입증한 무대였다. JTBC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 출연 중인 조승우는 그간 뮤지컬 '헤드윅'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 성공을 이끌었지만 지금까지 '오페라의 유령'에 출연한 적은 없었다. 2001년 한국어 공연 초연 당시 최종 오디션까지 올랐으나 영화 출연 일정이 겹치며 포기해야 했다. 7년 만에 도전한 새 뮤지컬로 '오페라의 유령'을 선택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6월까지 열리는 부산 공연의 조승우 공연 회차가 모두 매진된 상태다.

조승우는 이날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는 저주받은 음악 천재 '유령' 역을 인상적으로 소화했다. 특유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노련한 연기를 더해 극의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크리스틴을 떠나보내며 사랑을 고백하는 2막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절절함을 표현하는가 하면, 크리스틴과 함께 배를 타고 지하 미궁으로 들어가는 1막 호수씬에서는 작품의 시그니처 넘버인 '오페라의 유령'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유령은 천재 음악가지만 근육과 힘줄이 흉측하게 피부 바깥으로 드러난 얼굴을 갖고 태어난 불운한 존재다.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괴물'의 고독함과 천재의 광기, 사랑을 향한 집착 등 유령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조승우는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공연이 끝나자 오랫동안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배우들은 막이 내린 이후에도 박수 소리에 계속되자 여러 차례 무대로 돌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천하의 조승우지만 이날 제작사 에스앤코를 통해 "이 역할이 내 옷이 아닌지 고민하면서 도망가고 싶은 때도 있었다. 많이 떨었고 실수도 잦았지만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지킨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 역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조승우. 사진 에스앤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 역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조승우. 사진 에스앤코

지난달 30일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유령과 크리스틴, 귀족 청년 라울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1986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2001년 초연 당시 7개월간 24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국내에 '뮤지컬 산업'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 됐다.

이 유명 뮤지컬의 백미는 정교한 연출도, 화려한 무대나 의상도 아닌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음악이다. 막이 오르자 대극장에 가득 퍼지는 전자 오르간 소리가 단번에 관객을 휘어잡았다. 전주도 없이 시작부터 격정적인 멜로디로 휘몰아친 메인 넘버 ‘오페라의 유령’은 유령의 음악적 천재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꼭 그만큼의 연민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크리스틴의 심정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도구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었다. "날 위해 노래하라"는 유령의 다급한 외침에 화답하듯 고음의 기교를 선보이는 크리스틴의 목소리는 전율을 일으켰다. 그 뒤로 ‘바람은 그것뿐’, ‘생각해 줘요’, ‘그 밤의 노래’ 등 주요 넘버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막 중 47명의 배우가 함께 춤추는 가면 무도회 장면. 사진 에스앤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막 중 47명의 배우가 함께 춤추는 가면 무도회 장면. 사진 에스앤코

조승우는 폭발적 성량으로 무대를 장악해야 하는 유령 역 소화를 위해 출연이 확정되자 별도의 보컬 코칭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조승우를 실력 탄탄한 다른 배우들이 뒷받침했다. 특히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소프라노 손지수가 뮤지컬 데뷔작에서 여주인공인 크리스틴 역을 맡아 주요 넘버를 흠잡을 데 없이 소화해냈다. 서울대 성악과를 수석 졸업한 손지수는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친 실력파다. 다만 자신의 음악 스승이자 천재 작곡가인 유령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연민하는 복잡다단한 심정을 입체적으로 연기해내는 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인터미션을 제외한 130분 동안 22회 장면 전환과 82회 오토메이션 큐(무대 장치 작동 등을 위한 신호)가 이뤄졌다. 6분에 한 번 무대가 전환되고 2분에 한 번 무대 장치가 이동한 셈이다. 객석으로 수직 낙하하는 초대형 샹들리에, 41명의 배우가 형형색색 의상을 입고 춤추는 가면 무도회 등 역동적 무대 연출은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은 6월 18일까지. 7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