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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꼴 TV서 봤는데" 놀란 주민들…인왕산 잔불 진화는 아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2일 오전 산불이 발생해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2일 오전 11시 53분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치솟고 있다. 뉴스1

2일 오전 11시 53분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치솟고 있다. 뉴스1

소방당국에 따르면 산불은 이날 오전 11시 53분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 인근 인왕산 6부 능선에서 발생했다. 불은 이날 오후 4시 40분까지 축구장 약 21개 크기인 15.2ha(헥타르, 약 4만5980평)에 피해를 끼쳤다. 소방당국은 오후 12시 30분 대응 1단계를, 12시 51분 대응 2단계를 각각 발령했다. 오후 4시 40분 기준 진화율은 70~80%로, 진화 인력 2458명(소방 437명, 경찰 773명, 군 534명 등)과 헬기 15대, 소방 차량 101대 등 121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불길은 오후 1시쯤 서쪽으로 이동해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 등산로 인근의 개미마을과 홍제2동 환희사 쪽으로 확산했다. 이날 오후 2시쯤 찾은 개미마을 인근은 탄 냄새가 진동했고 하늘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따라 소방당국과 경찰은 홍제3동 주민센터, 인왕중학교, 홍제2동 주민센터와 경로당 등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고 주민 120가구를 대피하도록 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산불이 발생, 등산객들이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산불이 발생, 등산객들이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이 다소 진정세로 돌아선 건 이날 오후 5시 8분 쯤이다. 소방당국은 “산불 발생 5시간 15분 만인 이날 오후 5시 8분 초진이 완료돼 대응 단계를 한 단계 하향(2단계→1단계)했다”고 밝혔다.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 마련된 현장 지휘본부 브리핑에서 “일몰 때까지 화재 진압을 완료하기 위해 종로구·서대문구·은평구 3개구에 걸쳐 방어선을 구축했다”며 “헬기로 1차 진화를 하더라도, 사람이 산 위로 올라가 잔불까지 확실하게 잡아야 해서 완전 진화에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산불이 일어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또 “경찰과 소방이 합동으로 폐쇄회로(CC)TV 확인 등 실화·방화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산불 원인을 철저히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오후 2시 30분쯤 브리핑 현장을 찾았다.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종점 인근에 주민들이 대피해있다. 하늘은 연기로 뿌옇게 덮인 모습. 장서윤 기자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종점 인근에 주민들이 대피해있다. 하늘은 연기로 뿌옇게 덮인 모습. 장서윤 기자

도심에서 일어난 산불로 갑작스레 대피한 개미마을 주민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왕중 대피소에서 만난 개미마을 주민 서모(74)씨는 “경찰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대피하라고 안내해서 나왔다”며 “칠십 평생 이런 꼴은 TV서만 봤지 내가 피난민이 될 줄은 몰랐다. 마음이 떨려서 걷지도 못하겠다”고 말했다. 개미마을 초입에서 만난 주민 박상기(80)씨도 “노인정에 있다가 나와 보니 부암동 쪽에서부터 연기가 차츰차츰 번지고 있었다”며 “겁이 나서 부랴부랴 배낭에 약이랑 물이랑 옷가지만 챙겨서 나왔다. 심장이 떨린다”고 전했다.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에서 불길을 피해 대피한 김계연(68)씨가 손자 책가방을 챙겨나왔다. 장서윤 기자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에서 불길을 피해 대피한 김계연(68)씨가 손자 책가방을 챙겨나왔다. 장서윤 기자

개미마을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 김계연(68)씨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다가 연기가 나서 뛰쳐나왔다. 내일 학교 보낼 생각에 초등학교 4학년 손자 책가방만 챙겨나왔다”며 “이곳에서 40~50년 살았는데 이렇게 불이 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홍제3동 주민센터 근처에서 만난 주민 안동훈(48)씨 역시 “빠져나올 때는 연기만 보였는데 점점 불이 (마을 쪽으로) 왔다”며 “차를 다 빼고 애기들 먼저 대피시켰는데, 잔가지 탄 게 집 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이날 오후 6시 50분 브리핑에서 “서대문 방향 인왕산 기차바위 아래쪽에 낙엽 등 잔불이 남아 계속 진화 중”이라며 “일몰 시간이 지난 관계로 헬기는 2대만 남겨 오후 7시 30분까지 방수 작업을 하고, 유관 기관 합동으로 야간 순찰 및 경계 근무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유지하며 완진 때까지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다.

한편 이날 전국적으로 38건의 산불이 발생했다(오후 5시 기준). 충남 홍성에서는 대응 3단계에 이르는 큰 불이 발생해 소방당국 등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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