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마이크론 조사" 반도체 전쟁 반격 나선 中, 보복수위 높일까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중국 장쑤성 수첸현에 있는 한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중국 장쑤성 수첸현에 있는 한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4.63% 하락한 60.3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엔비디아(1.44%), AMD(0.13%), 인텔(1.81%) 등 주요 미국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오름세를 보인 것과 정반대 행보였다.

마이크론의 주가를 끌어내린 악재는 갑작스러운 중국의 보안규제 소식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이날 중국에서 판매되는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사이버보안 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마이크론의 핵심 시장인 중국 매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란 시장의 우려가 주가에 반영됐다. 지난해 마이크론 매출의 11%인 33억 달러(약 4조3230억원)가 중국 본토에서 나왔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건 이번 조치의 명분은 “중국의 국가 안보를 위해 숨겨진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판공실은 조사에 대해 “핵심적인 정보 인프라 공급망의 안전을 보장하고, 제품의 잠재된 문제가 네트워크 보안 위험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해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 수출통제에 대한 보복조치”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로고와 반도체 회로를 합성한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로고와 반도체 회로를 합성한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조치는 사실상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라고 본다. 지난해 10월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 수출을 제한했다. 여기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업체를 보유한 네덜란드와 일본을 압박해 제재에 동참하도록 했다. 이에 중국은 미국의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공급망 다양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CAC가 외국 기업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보안조사를 벌인 적은 없었다”며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이후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회사를 CAC가 조사하는 첫 외국기업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해당 조사는 중국의 보복 조치”라고 평가했다.

마이크론이 중국 당국에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는 점도 CAC의 조사를 받는 첫 외국 기업이 된 이유 중 하나다. SCMP는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 기업을 제재하는 움직임의 배후에 마이크론인 주요 로비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여겨 마이크론을 주시해왔다”고 전했다. 지난 2018년엔 마이크론이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푸젠진화(JHICC)가 자사 생산기술을 모방했다며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푸젠진화는 D램 반도체 개발을 포기해야 했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발표한 분기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마이크론의 중국 시장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며 “나아가 중국에서 주로 생산되는 반도체 핵심 원료인 희토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제재 동참 확산 막으려는 의도”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미국 전력 반도체 제조업체 울프스피드의 공장을 찾아 연설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미국 전력 반도체 제조업체 울프스피드의 공장을 찾아 연설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크론을 넘어 네덜란드와 일본 등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에 동참하는 국가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라드 디피포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에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수출 통제 강도를 높이지 못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탄젠(談踐) 주네덜란드 중국 대사는 지난달 중국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네덜란드가 첨단 반도체 장비에 대한 대중 수출을 강화한다면 중국은 참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FT는 “올해 ‘위드 코로나’ 원년을 선언한 중국이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에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미국의대중수출 제재에 관해선 더 많은 반격을 이어갈 수 있다”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 글로벌 기업인들이 지난달 말 중국발전고위급포럼을 찾아 고위급 관리들을 만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전했다. 디피포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나 미국 기술에 대한 중국의 의존을 우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이런 조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기술 열세인 中, 보복 조치 확대는 미지수 

지난 20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박람회 행사장에서 한 시민이 광고판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박람회 행사장에서 한 시민이 광고판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에 맞서 맞불 보복의 수위와 범위를 계속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미국과 동맹국들보다 열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기에 전선을 확대할 경우 중국 반도체 산업이 입을 타격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마이크론을 문제 삼았지만, 엔비디아나 AMD 등 미국의 수출 규제를 따르는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 제조업체에까지 규제 조치를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 금융투자정보업체 모닝스타의 아비나브 다부루리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자체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해 왔는데 이 중 자신들이 가장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라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