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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로 난치병 유발 유전자 억제, 암도 치료할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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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호 14면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RNA 연구 석학,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겸 IBS RNA연구단장이 참여한 ‘다이서 단백질’ 연구 결과 2편이 지난 2월 네이처에 동시 게재됐다. 전민규 기자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겸 IBS RNA연구단장이 참여한 ‘다이서 단백질’ 연구 결과 2편이 지난 2월 네이처에 동시 게재됐다. 전민규 기자

아기는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자랄까. 다 아는 얘기지만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을 거쳐 배아세포가 되고 이후 계속해서 세포 분열이 일어나면서 눈·코·입과 팔 다리가 달린 사람의 모습으로 자란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까.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게 세포 핵 속 DNA다. 이게 RNA 형태로 복사된 뒤 단백질 생산공장이라고 알려진 리보솜으로 전달돼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게 RNA다. RNA는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 메신저RNA(mRNA)는 유전정보를 운반하고, 마이크로RNA(miRNA)는 유전자를 억제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만들어진 모더나와 화이자의 백신이 RNA를 이용한 거다. 김빛내리(53).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이면서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을 맡고 있는 석학이다. 그는 2008년 세계 최초로 동식물 세포에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해 세포 분화와 배아 발생, 암 발생 과정 등을 제어하는 miRNA의 조절과 생성 메커니즘을 규명, 생명과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다이서 단백질’ 핵심 작동원리 규명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최근 ‘RNA 유전자 치료제 개발 새 가능성 열었다’는 제목 하에 김 단장 연구팀이 miRNA 생성과 RNA 치료제에 중요한 ‘다이서(DICER) 단백질’의 핵심 작동원리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또 노성훈 서울대 교수 연구팀과 함께 지난 20여 년간 베일에 쌓여있던 다이서의 3차원 구조를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술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두 연구 결과는 대표적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2월 23일 동시 게재됐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김 교수를 만나 RNA의 세계를 탐구했다.

RNA가 뭔가.
“RNA는 핵산의 일종인데, DNA처럼 유전정보를 담아 전달하는 물질이다. DNA의 사촌쯤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굉장히 비슷하고, 둘 다 기본적으로 핵산 분자다. DNA에는 염기들이 붙어있는데, 그 염기들의 서열이 일종의 유전암호 역할을 한다. 좀 쉽게 설명해보겠다. DNA는 세포핵이란 이름의 도서관 안에 소장이 돼 있는 요리책으로 비유할 수 있다. 특정 요리를 만들려면 요리책을 부엌으로 가지고 와야 하는데 못 갖고 오니까 조리법 페이지(유전정보)만 복사해서 들고 와서 요리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복사본이 RNA이고, 최종 요리는 단백질인 셈이다.”
miRNA와 mRNA는 어떤 기능을 하나
“DNA 유전정보를 받아 단백질을 만드는 곳(리보솜)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게 mRNA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주사 맞았던 백신 중 높은 예방률로 주목받았던 게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파악해 그 서열을 가진 R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만들었다. miRNA는 mRNA의 100분의 1 정도 되는 아주 작은 RNA다. 이게 mRNA에 붙어서 잘못된 걸 만들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막아주는 일종의 경찰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miRNA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우리 몸을 만들어가는 모든 세포에 다 존재하며,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에 관여하고 있다. 거의 1000종에 달하는 miRNA가 있는데, 각각 서로 다른 유전자들을 조절한다. 인간의 몸엔 2만 종 이상의 유전자가 있는데, 이 대부분이 miRNA 조절 아래 있다. 줄기세포가 다양한 체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에서도 miRNA가 작용하고 있다. miRNA가 잘못되면 암이나 다른 질병이 생길 수 있다. 한편으론, miRNA를 이용하면 원하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도 있다.”
RNA의 여러 종류 중 왜 miRNA를 주 연구대상으로 삼았나.
“miRNA가 처음 발견된 게 1993년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이 분야 연구는 거의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박사후연구 과정을 마치고 2001년 귀국해 서울대에서 연구를 시작하는데,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그게 miRNA였다. 당시만 해도 miRNA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무슨 기능을 하는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달 네이처에 게재한 연구논문의 의미는.
“miRNA가 만들어지는 데 두 종류의 효소가 필요하다. 드로셔와 다이서가 그것이다. 2016년 논문에서 드로셔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혔고, 이번 연구에서 다이서의 비밀도 알아냈다. 이로써 miRNA가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에서 일어나는 분자적인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이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miRNA로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RNA 간섭기술이 대표적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miRNA, 즉 siRNA(small interfering RNA)로 바이러스 유전자나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억제할 수 있다. RNA 간섭기술은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mRNA를 타겟해서 없애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으면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복제하게 되어 암덩어리가 계속 커지는데, miRNA로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억제하면 암을 치료할 수 있다.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면 그 유전자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miRNA를 이용할 수 있다. 즉, RNA 간섭기술을 이용해 일종의 RNA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현재 고콜레스테롤증 치료제 등 여러 종의 siRNA가 개발되어 있고, 그 외에도 B형 간염 치료제 등이 임상시험 중이다.”
유전자가위로 DNA를 편집해서 질병을 고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
“유전자가위는 DNA 속 특정 염기를 없애거나 염기서열을 바꾸는 거다. 이게 질병에 따라 좋은 경우도 있고, 안 좋은 경우도 있다. DNA 편집은 유전병을 치료해 다음 세대로 병이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지만, 한번 잘못 편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반면 RNA치료제는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없어지기 때문에 화학약품을 복용하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시술받아야 한다. 단점이라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유전질환을 후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아 치료한다고 할 때는 DNA, 질병을 안전하게 치료하고 싶다고 할 때는 RNA라 얘기하면 되겠다.”
RNA로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사실 이론적으론 그렇다. 너무 과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생명 현상은 전부 유전자 조절로 인해서 일어난다. 이걸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생명현상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은 많이 남아있다.”

miRNA는 mRNA의 100분의 1 정도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RNA 기술의 미래를 말하자면.
“미래는 이미 왔다. 코로나19 백신 등 miRNA와 mRNA를 이용한 신약은 이미 FDA의 승인이 나서 사람들에게 쓰이고 있으니까. 현재 임상 2,3상에 있는 바이러스 백신과 암 백신만도 아주 많다. 여러 기업에서 miRNA 신약을 개발 중이다. 향후 3~5년 안에 다양한 RNA 치료제 신약이 나오고, 30년 이내에 RNA 치료제가 주요 의약품으로 자리 잡고 많은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거다.”
세계 RNA 연구 경쟁에서 IBS RNA연구단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RNA 여러 연구 분야별로 다르겠지만 mRNA와 miRNA의 작동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실적이라 할 수 있다.”
RNA를 선두에서 연구하는 입장에서 미국이 RNA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겠다.
“같은 RNA 연구자 입장에선 아주 기쁘고 축하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는 못 했다는 게 심히 아쉬웠다. 우리 연구수준은 미국과 비교해 모자랄 것이 없는데 저쪽에선 팬데믹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뭔가를 실제로 만들어 냈으니…”
우린 왜 못했을까.
“RNA 코로나 백신이 나온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클러스터를 들여다보면 부러운 게 많다. 거기엔 산·학·연 모든 구성요소들이 집적돼 있어 기초연구하는 사람들이 쫓아다니면서 펀딩을 받고, 회사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기술이전을 한다든가, 혹은 창업하는 초기에만 조금 신경 쓰면 된다. 그 다음엔 산업계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한다. 우린 그게 안 된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한다고 될는지 모르겠지만,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박함을 좀 가지면 좋겠다. 미래는 과학기술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결국 과학기술에서 나온다. 산업·경제적 측면이든 안보 차원이든 궁극적인 경쟁력은 과학기술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절박함을 가지고 과학기술 교육과 인재 양성에 투자하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은커녕 나라의 존립도 위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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