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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옴시티·화성 정착촌, 첨단 도시냐 그들만의 유토피아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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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16면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미래도시 빛과 그림자  

영화 ‘엘리시움’의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엘리시움’의 한 장면. [중앙포토]

지구 상공 400㎞의 저궤도. 지름 1.6㎞, 거대한 고리 모양의 우주 구조물이 떠 있다. 언뜻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연상시키지만, 구조물 내엔 지구에서처럼 나무가 자라는 울창한 정원과 깨끗한 공기가 있다. 상주인구가 1만 명에 달하는 이곳엔 거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첨단의료 스캐너, 로봇 비서, 태양계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첨단 우주선 등이 있다. 거대한 핵융합로가 만들어내는 무한 청정에너지가 이 ‘우주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2013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엘리시움’(Elysium)에 등장하는 ‘우주 도시’의 모습이다.

시대 배경은 앞으로 130여 년 뒤인 서기 2154년. 지구는 폭증한 인구로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오염돼 사람이 살기 부적절한 곳이 됐다. 대신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의 우주 도시 엘리시움은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는 엘리트들이 첨단 과학기술의 힘으로 만들어 낸 그들만의 유토피아다.

엘리시움은 SF영화 속 22세기 우주 도시이지만, 21세기 인류는 이미 ‘미래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엘리시움이 오염된 지구의 대안이듯, 현실 속 미래도시 계획 또한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현재의 대안 환경이다. ‘특이점’(singularity)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 21세기 첨단 과학기술이 미래도시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내고 있다.

“사막 미래도시, 결국 화성 정착촌 향해”

옥사곤 해상 부유식 첨단산업단지 ● 지름 7㎞ 팔각형 구조 ● 연간 170만TEU 규모 컨테이너 ● 터미널과 홍해에서 가장 큰 크루즈 터미널 도입 예정

옥사곤 해상 부유식 첨단산업단지 ● 지름 7㎞ 팔각형 구조 ● 연간 170만TEU 규모 컨테이너 ● 터미널과 홍해에서 가장 큰 크루즈 터미널 도입 예정

중동의 맏형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 중인 ‘네옴 시티’(Neom city)는 혁신과 기술·지속가능성을 모토로 내세운 대표적인 미래도시다. 2017년 사우디 정부가 처음 발표한 이 프로젝트는 석유 고갈 이후 미래라는 재앙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계획한 ‘비전 2030’의 일환이다. 사우디 북서부 홍해 연안에 자리 잡을 이 도시의 면적은 2만6500㎢로, 우리나라 경상남북도(3만2289㎢)보다 조금 작은 정도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따르면 네옴시티는 석유가 아닌 태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만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자율주행차와 고속열차를 포함한 교통시스템 네트워크가 뻗어있다. 현대 과학기술이 집약될 거대 스마트시티인 네옴의 상주 거주인구 규모는 최대 100만 명에 달한다.

네옴시티의 일환으로 지난해 7월 발표한 ‘네옴 더 라인’은 미래도시의 ‘끝판왕’격이다. 규모로만 보면 SF영화 엘리시움이나, 승리호의 UTS와 같은 우주 도시가 되레 초라할 정도다. 조감도를 보면 좁은 담벼락 두 개가 끝없이 이어진 것 같으나, 실상은 높이가 500m에 달하는 초대형 건축물 두 채가 200m 거리로 나란히 마주 보고 서서 170㎞ 길이로 이어지는 ‘직선형’ 도시다. 더 라인에는 개인 자동차가 필요 없다. 도시의 끝에서 끝은 서울에서 경북 문경쯤에 달하는 거리인데, 지하에 고속열차가 다녀서 2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형제국인 아랍에미리트(UAE)에는 선배 격의 ‘미래도시’가 있다. UAE 정부가 2006년 건설을 천명한 탄소제로 도시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가 그것이다. 수도 아부다비 남동쪽 17㎞ 사막 지역, 6㎢ 면적의 이 미래도시는 4만 명의 인구를 수용한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환경오염도 줄이고 탄소제로 사회도 구현하겠다는 목표다. 또 이를 바탕으로 UAE가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비전도 가지고 있다.

인류는 이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도시까지 꿈꾼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화성 도시’다. 그는 아직 화성 도시의 세부계획을  구체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지만, ‘최소 100만 명이 거주하는 자급자족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라고 말했다. 도시의 에너지원은 태양광과 원자력을 사용하고, 자체 법률과 통치제도를 갖춘 고도의 자치권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화성 도시의 목적 또한 대안이다. 인류가 지구에서 멸망에 이르는 재앙을 맞을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예비 계획으로 고안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미래도시 마스다를 구축 중인 UAE는 한술 더 뜬다. 2017년 UAE 부통령이면서 국가 우주프로그램의 지휘부인 무함마드빈라시드 우주센터(MBRSC)의 창립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은 2117년까지 화성에 인간의 정착촌을 건설하는 ‘화성 2117’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화성 정착촌은 투명한 폴리에틸렌 막을 이어붙인 초대형 ‘바이오 돔’ 모양이다. 이런 돔을 여러개 건설해 정착촌을 넓혀 나간다는 구상이다. 돔 사이 왕래는 지하터널을 이용한다. 화성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과 공기, 에너지는 지하에 있는 얼음을 전기분해해 만든다고 한다.

UAE의 화성 정착촌은 아무도 책임 안 질 100년 뒤 세상에 대한 허풍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말 잔치’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화성 정착촌에 앞서 지구에서 화성 환경을 모사한 17만5000㎡(약 5만2900평) 규모의 ‘화성 과학 도시’(Mars science city) 계획도 나와 있다. 덴마크 건축설계업체 비야케잉겔스그룹(BIG)이 MBRSC에 제안한 포로토 타입에 따르면 화성과학 도시는 화성 정착촌처럼 투명 바이오돔 형태이며, 돔 내부 건물은 화성 토양에 가까운 사막 흙을 이용해 3D프린팅으로 건설된다. 주거 공간은 지하 1.8m 깊이에 둔다. 우주 방사능을 차단하고 빛은 받아들이기 위해 물이 가득한 어항의 형태의 천창(天窓)을 둔다.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도시생활에 필요한 박물관·갤러리 등 문화시설도 마련한다.

“적정기술로 현재 지구촌 문제 풀어야”

더라인 자급자족형 직선 도시 ● 폭 200m·높이 500m·길이 170㎞ ● 외벽이 거울인 건물 2개로 구성 ● 인구 2030년 100만명, 최종 900만명 목표

더라인 자급자족형 직선 도시 ● 폭 200m·높이 500m·길이 170㎞ ● 외벽이 거울인 건물 2개로 구성 ● 인구 2030년 100만명, 최종 900만명 목표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은 “중동 사막에 건설 중인 미래도시는 결국 화성 정착촌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며 “물과 에너지, 자원이 제한된 곳에서 순환 경제로 지속 가능한 도시를 건설, 운영하면서 얻게 될 노하우와 인문 사회학적 통찰은 미래 화성 도시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는 왜 미래도시를 말할까. 미래도시는 뭘까. 건축계에선 미래도시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국가·사회마다 안고 있는 문제가 다르고, 원하는 미래 또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론 환경오염과 교통지옥 등 현재의 문제를 안고 있는 도시의 대안으로 미래도시를 말한다.

『공간을 말하다』의 저자, 이상호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세계가 미래도시, 즉 스마트시티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재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UAE의 마스다르시티는 석유와 사막으로 대변되는 시한부 도시로 이뤄진 중동국가의 대안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스마트한 교통, 첨단 통신네트워크와 같은 환경에다 최근 지구온난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탄소제로 에너지와 같은 요소들이 더해진다. 이 교수는 또 “역사적 맥락에서 미래도시는 쇠퇴냐 번영이냐를 가를 수 있는 생존의 도구였다”며 “기술패권 전쟁과 에너지 전환 등 미래를 변화시킬 전환기에 있는 지금 세계열강이 미래도시를 앞다퉈 계획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미래도시 건설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SF영화 속 우주 도시 엘리시움이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네옴시티와 같은 첨단 미래도시는 디스토피아를 전제로 한 유토피아라는 주장이다. 영화 엘리시움에도 지구촌은 환경오염 등으로 버려져 있고, 1% 미만의 선택받은 엘리트들만이 우주도시에서 무병장수한다. 네옴시티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인구(3500만명)의 수용이 아닌 선택받은 소수들이 누리는 첨단 도시라는 측면에서 같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인 함인선 전 한양대 교수는 “엘리시움이든 네옴시티든 문제는 ‘그들만의 유토피아’라는 점”이라며 “제한된 사람들이 사는 유토피아 밖엔 거대한 디스토피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장밋빛으로 그려놓은 미래 첨단도시는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미국 애리조나 어퍼 소레나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미래도시 ‘아르코산티’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인 파울로 솔레리(1919~2013)씨가 설계한 아르코산티는 1970년 첫 삽을 뜬 뒤 지금까지 건설이 진행 중인 세계 최초의 생태환경 도시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사막기후 속 도시지만, 공기의 흐름과 태양의 움직임을 고려해 최소한의 에너지만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직장과 주거가 한곳에 모여있어 자동차가 필요 없다.

함 교수는 “현대 도시의 대안은 아르코산티와 같은 모델이 여러 곳으로 확산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며 “첨단 과학기술이 아닌 적정기술로 현재 모두가 사는 지구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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