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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승부조작 선수 사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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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축구대표팀과 우루과이의 A매치 맞대결에 쏠린 지난 28일 오후, 대한축구협회가 징계 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전격 단행했다. 각종 비위 행위로 인해 징계 처분을 받은 전·현직 선수와 지도자, 심판, 각종 단체 임원 등이 대상자다. 이들 중에는 지난 2011년 국내 프로 스포츠를 뒤흔든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가담해 영구제명 처분을 받은 선수 48명도 포함돼 있다.

축구협회는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기 위해 이번 사면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무기한 자격 정지 대상자는 효력 발생일로부터 5년 이상, 유기한 자격 정지 대상자는 처분 기간이 절반 이상 경과한 자들 중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되는 이에 한해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면은 선고의 효력 또는 공소권 상실, 형 집행을 면제하는 최고 집행권자의 고유 권한이다. 해당 규정을 도입한 취지는 생계형 범죄자나 도로교통법 위반자 등 비교적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해당 징계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 있다.

긍정적인 기능이 존재함에도 우리가 ‘사면’이라는 단어에 좀처럼 호감을 갖지 못 하는 이유는 이 제도를 오·남용한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면 대상자 명단에 비리 정치인·고위 공직자·경제인 등을 포함하며 절대 가볍지 않은 범죄를 눈감아 준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축구협회는 이번 결정이 정치권에서 종종 발생하는 사면권 오·남용 케이스와 닮은꼴이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한 번의 실수가 축구인 한 명의 인생을 영원히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선 안 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승부조작처럼 종목 자체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비위를 저지른 이들의 죄를 사하는 명분이 ‘월드컵 16강 진출’이어선 곤란하다.

이번 사면이 암암리에 승부 조작 기회를 엿보는 스포츠계 검은 세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선수나 감독, 심판을 매수해 경기 결과를 뒤집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적발돼도 10년쯤 버티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에 축구협회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