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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 꺼낸 北…외부선 中대사 받고, 내부엔 反美 감정 고취

중앙일보

입력

소형 전술핵탄두로 추정되는 ‘화성-31’의 실물을 공개한 북한이 대외적으로 중국과의 밀착을 강화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반미(反美) 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27일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면서 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재차 지시했다. 신문은 '화산-31'로 명명된 것으로 보이는 새 핵탄두가 대량생산된 모습도 전격 공개했다.  뉴스1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27일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면서 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재차 지시했다. 신문은 '화산-31'로 명명된 것으로 보이는 새 핵탄두가 대량생산된 모습도 전격 공개했다. 뉴스1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핵도발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중국ㆍ러시아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데서 발생하는 주민들의 민심 이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北, 코로나 부담에도 中에 국경 열어

북한은 지난 27일 왕야쥔(王亜軍) 주북 중국대사의 입국을 허용했다. 2021년 1월 대사로 내정된 지 2년 2개월만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이후 국경을 봉쇄한 북한이 외국의 대사를 받아들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9년 6월 20일 평양 5·1 경기장의 집단 체조 공연 관람을 마친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출연진을 격려한 뒤 주석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붉은 깃발 물결 가득한 10만 관중석이 인상적이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019년 6월 20일 평양 5·1 경기장의 집단 체조 공연 관람을 마친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출연진을 격려한 뒤 주석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붉은 깃발 물결 가득한 10만 관중석이 인상적이다. [신화=연합뉴스]

주북 중국대사가 부임한 27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고 핵반격작전계획과 명령서를 검토했던 날이다. 북한은 바로 다음날인 28일 핵탄두 실물을 비롯한 김정은의 발언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중국대사의 부임과 관련,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조(북중) 쌍방 합의로 27일 왕야쥔 조선 주재 중국대사가 조선에 도착했다”며 “최근 몇 년 간 양당 최고영도자의 전략적 인도 아래 중조 관계는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마오 대변인이 언급한 ‘전략적 소통 강화’는 김정은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여러 차례 친서를 통해 약속해왔던 사안이다. 시 주석은 특히 지난해 10월 친서에서 “지금 국제 및 지역 정세에서는 심각하고 복잡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전략적 의사소통을 증진하고 단결과 협조를 강화해야 할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적기도 했다.

북ㆍ중간 ‘전략적 소통’의 핵심은?

전문가들은 현시점에 북ㆍ중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려는 핵심은 핵ㆍ미사일과 관련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신문은 24일 "21일부터 23일까지 새로운 수중공격형 무기체계에 대한 시험을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총비서가 참관한 가운데 '핵 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과 전략순항미사일의 모의 핵탄두 공중폭발 시험을 진행했다. 김 총비서는 "적들에게 더욱 가속적으로 확대강화되고 있는 우리의 무제한 핵전쟁억제능력을 인식시키기 위한 공세적 행동의 필요성이 있다"라고 말했다.뉴스1

노동신문은 24일 "21일부터 23일까지 새로운 수중공격형 무기체계에 대한 시험을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총비서가 참관한 가운데 '핵 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과 전략순항미사일의 모의 핵탄두 공중폭발 시험을 진행했다. 김 총비서는 "적들에게 더욱 가속적으로 확대강화되고 있는 우리의 무제한 핵전쟁억제능력을 인식시키기 위한 공세적 행동의 필요성이 있다"라고 말했다.뉴스1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례 없이 강화된 한ㆍ미ㆍ일과 북ㆍ중ㆍ러의 극단적 대결 구도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더 적극적인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된 측면이 있다”며 “중국도 주북한 대사를 통해 북한이 향후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 7차 핵실험 등에 대해서도 미리 협의할 채널을 마련해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고위 외교관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도 “전략적 소통은 동북아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핵실험 같은 대형 도발 등을 중국과 사전에 협의한다는 약속”이라며 “(사전 협의로)시 주석의 체면은 세워줘야 북한도 핵실험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 의원은 이어 김정은이 핵실험 ‘재가’를 받기 위해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전망했다.

“핵 기하급수적 늘려라”…핵심 원료는 플루토늄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고도화를 사사건건 옹호하며 유엔을 사실상 마비시킨 상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건배사를 한 후 중국어로 “간베이(乾杯)”를 외쳤다. 시 주석은 잔을 푸틴 대통령의 잔보다 높이 들었다. [스푸트니크=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건배사를 한 후 중국어로 “간베이(乾杯)”를 외쳤다. 시 주석은 잔을 푸틴 대통령의 잔보다 높이 들었다. [스푸트니크=연합뉴스]

특히 중ㆍ러는 지난 21일 정상회담에서 고속 중성자 원자로 협력 계약을 맺었다. 고속 중성자 원자로 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플루토늄과 관련한 협력으로, 사실상 러시아가 중국에 핵폭탄의 주원료인 플루토늄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이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확보할 경우 이는 단기간에도 급속한 핵탄두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플루토늄이 필요한 건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28일 북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핵탄두 실물을 확인한 뒤 “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은 이어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전망성 있게 확대하며 계속 위력한 핵무기들을 생산해내는 데 박차를 가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현재 핵물질을 비롯한 사실상 전분야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김정은의 지시처럼 핵물질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중국 채널이 유일하다.

배고픈 주민에겐 ‘반미’ 강조

전날 핵탄두의 실물을 공개하는 등 대대적 ‘핵 홍보전’을 벌였던 북한 매체들은 29일엔 일제히 반미(反美) 의식을 고취하려는 선동성 기사를 주민들이 읽는 매체에 실었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 부산 입항 한미 해군 연합 해상훈련에 참가한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CVN 68?10만t급)가 28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길이 332.8m, 폭 76.8m, 승조원 6000여 명 규모인 니미츠함은 F/A-18F 슈퍼호넷 등 함재기 90여 대을 탑재할 수 있어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린다. 송봉근 기자 20230328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 부산 입항 한미 해군 연합 해상훈련에 참가한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CVN 68?10만t급)가 28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길이 332.8m, 폭 76.8m, 승조원 6000여 명 규모인 니미츠함은 F/A-18F 슈퍼호넷 등 함재기 90여 대을 탑재할 수 있어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린다. 송봉근 기자 20230328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철천지 원쑤들에게 세기와 세대를 이어 천백배로 다져온 영웅조선의 절대적 힘, 불패의 자위의 맛이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자는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울려 나오고 있다”먀 “원쑤들을 절대로 용서치 않고 무자비하게 징벌하리라”라고 위협했다.

또 ‘원산상륙’‘평양점령’‘참수작전’ 등을 언급하며 “입에 올리기조차 서슴어지고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원쑤들의 가증스러운 행태에 온 나라 전체 인민이 격노하여 나섰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관영 매체를 통해 한국을 '주적'으로 상정한 '대남 대결전'이라는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11년 만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진행되는 반제계급의식을 강조하며 "미제야말로 피에 주린 극악한 살인귀 무리"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함경북도계급교양관.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진행되는 반제계급의식을 강조하며 "미제야말로 피에 주린 극악한 살인귀 무리"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함경북도계급교양관. 뉴스1

북한이 전 주민이 보는 관영매체에 노골적 어휘의 비난 보도는 내놓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전국적으로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의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이 대남ㆍ대미 적개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내부의 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서 미국의 전략자산까지 전개된 상황에서 미사일 도발 말고는 마땅한 군사적 대응책 없는 상황”이라며 “반미 의식을 의도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것은 식량난을 비롯한 내부의 민생문제와 관련한 민심 이반 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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