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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평생 새 글에 매달려…그에겐 ‘도전 더듬이’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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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이어령 1주기 특별전에 참석한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남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이어령 1주기 특별전에 참석한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남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11년 만의 도쿄(東京) 방문이 힘에 부쳤던 모양이다. 갑작스런 위경련에 꼼짝없이 하룻저녁을 호텔 방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강인숙(90) 영인문학관장은 아무 일 없던 듯 곱게 차려입고 지난 24일 약속 장소에 나왔다. 강 관장은 “멀리서도 잊지 않아 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라고 했다.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아내이자 평생의 문학 동지인 강 관장은 이 전 장관 1주기를 맞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 특별전시회 개막식 참석차 일본을 찾았다.

강 관장은 자리에 앉자 봄꽃 이야기부터 꺼냈다. “사실 저는 봄에 떠난 가족들 생각에 지난 1년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생활해 왔거든요. 그런데 도쿄에 꽃이 굉장히 예쁘게 피었네요.” 사랑하는 딸과 65년을 해로한 남편을 모두 봄에 떠나보낸 탓에 “꽃 피는 게 싫다”고 할 정도로 봄은 여전히 고통의 시간이다.

그런데도 1100여㎞나 떨어진 도쿄까지 날아온 건 순전히 전시회 때문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하루에 천 리씩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일 년이면 얼마나 먼 거리를 갔을까요. 그런데도 이 먼 곳에서 기억해주시니 감사하지요.”

이 전 장관이 1981년부터 도쿄대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며 일본어로 써낸 『축소지향의 일본인』(일본 학생사·1982)은 현지에서 ‘이어령 신드롬’을 낳았다. 한국인이 일본 문화의 폐부를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다. 당시 일본 NHK가 정규 뉴스로 15분간 다루고 5개월 만에 16쇄를 찍었을 정도였다. 이후 이 전 장관의 저서는 속속 일본어본으로 출간됐다.

강 관장은 이 전 장관 별세 후 이어령 전집 출간에 몰두했다. 이 전 장관은 7년간 암투병 속에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고 원고 작업의 80%를 마친 상태였다. 생전 시와 소설 등 160여 권의 저작을 남겼는데, 강 관장이 나머지 20%를 맡아 1년 만인 지난달 전집을 출간했다.

살을 맞대고 살아온 강 관장이 본 ‘이어령의 정신’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앉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새것에 대한 관심 때문에 늘 새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며 “나와 달리 도전하는 더듬이가 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문학동지로서 보내는 극찬이다.

‘남편 이어령’ 얘기에 강 관장 목소리가 빨라졌다. “이어령은 입시생처럼 평생을 산 사람”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2~3시까지 글을 썼는데, 아이들조차 ‘아우, 난 저렇게는 안 살아, 일생을 어떻게 저렇게 살아?’라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강 관장은 “이제 내 글을 쓰겠다”면서도 컴퓨터 7대에 담긴 남편 원고 걱정을 했다. “방대한 글과 자료를 분석하는 데 오래 걸리겠지만 잊지 않고 이어령 연구를 계속해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날 개막한 전시회엔 강 관장이 모아온 이 전 장관 육필 원고와 필기구, 사진과 저서 100여 점이 전시됐다.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다”던 생전 바람처럼 다양했던 이 전 장관의 일대기도 담았다.

1972년 창간한 『문학사상』 표지에 작가 얼굴을 실은 사연부터 88서울올림픽의 ‘굴렁쇠 소년’ 연출,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특별전은 다음 달 25일까지 한 달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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