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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배 교수 "113년간 찾지 못한 안 의사 유해, 범정부 차원 발굴 나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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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호 16면

안중근 연구 19년,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가 지난 21일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모셔져 있는 서울 효창원에서 중국 현지에서의 안 의사 유해 발굴 노력과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가 지난 21일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모셔져 있는 서울 효창원에서 중국 현지에서의 안 의사 유해 발굴 노력과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당시 남긴 유언이다. 안 의사의 유해는 감옥서 묘지에 묻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순국 113년이 지나도록 안 의사의 유해 환국은커녕 정확한 매장 위치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성과 없이 끝난 2008년 한·중 공동 조사 이후 유해 발굴은 아무런 진척이 없다.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는 스스로를 ‘안중근의, 안중근에 의한, 안중근을 위한’ 시간을 살아왔다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 성공할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조차도 기약할 수 없는 안 의사 유해 찾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2005년부터 19년째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자료 수집을 하고 있다. 안중근 의거 현장인 하얼빈의 대학을 직장으로 선택한 것도 안 의사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그가 최근 펴낸 신간 『유해 사료, 안중근을 찾아서』는 유해 매장 지역 현장 답사와 발굴단 심층 인터뷰 뿐 아니라 한·중·일 3국을 오가며 수집한 미공개 기록물도 두루 담았다. 오는 26일 순국 113주기를 앞두고 안 의사의 가묘가 있는 효창공원을 찾은 김 교수는 “안 의사의 유언을 받드는 건 단순히 유골을 모시는 걸 넘어 국가를 위해 살신성인한 분들을 나라가 반드시 기억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비행기로 1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113년간 못 오고 계신 데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안 의사 순국 후 유족들이 유해를 돌려받지 못한 이유는 뭔가요.
“1908년 10월 제정된 일본 감옥법 75조는 후손이나 친척이 사망한 죄수의 유골을 원하면 교부받을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어요. 이에 따라 유족들도 안 의사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유해를 돌려 달라고 일본 측에 요구했었죠. 하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하얼빈 공원이 추후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걸 우려했거든요. 이후 일본은 안 의사 유해를 비밀리에 매장했고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중국의 협조를 얻어 뤼순 감옥 인근에서 발굴 작업을 했죠.
“당시 발굴단은 감옥 북쪽에 있는 위안바오산이란 곳을 탐색했습니다. 안 의사 순국 당시 감옥소장을 지낸 구리하라의 딸인 이마이 여사가 우리 정부에 전해준 사진과 증언 등을 근거로 삼았는데 아쉽게도 유해는 발견되진 않았습니다. 같은 해 중국이 인근 야산도 발굴했지만 역시 성과가 없었고요. 당시 작업을 하려고 했던 구역 중 일부는 중국 군부대란 이유로 손도 대지 못했어요. 양국 국방부 간에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런데 미국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6년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문제를 제기한 뒤 협정을 맺고 중국 영토 내에서 발굴작업을 여러 차례 실시했고요. 2004년엔 6.25 전쟁 때 압록강 너머로 추락한 미군 조종사 유해를 찾아 송환해 가기도 했습니다. 이제라도 안 의사 유해 봉환을 국무회의 안건으로 격상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김 교수는 “당장 유해가 묻힌 위치를 찾는 게 급선무”라며 “문헌 자료만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들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뤼순 감옥에 근무했던 사람이나 후손들, 지역 주민들 목소리까지 두루 들으면 유의미한 단서를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백골이 흙과 티끌이 돼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자료에만 의존할 순 없잖아요.”

유력 후보지로 꼽히는 곳 중에 아직 조사를 못한 곳이 있습니까.
“우리 정부는 크게 세 곳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곳은 2008년 한 차례 발굴 작업이 이뤄졌고요, 남은 한 곳이 둥산포라고도 불리는 이곳입니다. 뤼순 감옥에서 700~800m 떨어져 있는 동쪽 산 언덕인데 현재 300여 구의 시신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1960~70년대엔 죄수들 유골이 발굴되기도 했죠.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현장 훼손도 심하지 않은 상태고요. 안 의사도 이곳에 묻혀 계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더 늦기 전에 확인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요.
“중국도 나름 유해 발굴에 협조를 했었어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1998년 부주석 당시 방한해 발굴 참여 의사를 밝혔고 2008년엔 공동 발굴 작업에도 나섰고요. 중국 측은 안 의사 고향이 황해도 해주인 점을 감안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발굴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또 아무 땅이나 파헤칠 순 없다며 보다 구체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
국가보훈처가 컬러 로 복원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내건 안중근 의사 존영. [연합뉴스]

국가보훈처가 컬러 로 복원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내건 안중근 의사 존영. [연합뉴스]

그러면서 그는 “중국 못지않게 일본 쪽의 문도 적극 두드릴 필요가 있다”며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이나 퇴직한 관료 등을 접촉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을 듣는 것도 유해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유해가 발견될 경우 안 의사 유골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크게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안 의사가 모셔진 네모난 침관, 기존에 채취해 보관 중인 안 의사 증손자 DNA와 대조, 죄수 이름표, 안 의사의 네 번째 손가락, 안 의사가 소지한 십자가 목걸이 등이 확인되면 비로소 안 의사 유해를 찾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안 의사 가족들 유해도 못 찾았다면서요.
“맞습니다. 안 의사 친모인 조마리아 여사와 안정근·공근 형제 등 가족 16명의 유해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 분들은 단지 안 의사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모두 조국을 위한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던 분들인 만큼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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