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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한국서 김정은 어떻게 보나" 창원 간첩단 "文보다 낫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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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경남 지역에서 조직된 간첩단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가 국내 정치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고하라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 등에 대한 평가를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문화교류국은 지령문에서 김 위원장을 “총회장님”으로 표현했고, 간첩조직은 “이사회”라 부르며 정권 퇴진운동 등을 지시했다.

북측 공작원에게 지령을 받고 간첩단 활동 혐의를 받는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소속 회원들이 지난 1월 3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뉴스1

북측 공작원에게 지령을 받고 간첩단 활동 혐의를 받는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소속 회원들이 지난 1월 3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뉴스1

북측 "김정은 남한서 어떻게 생각하나?" 물어

23일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자통 조직원은 우리 국민들의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임의적으로 판단해 북측에 보고했다. 북한 공작원이 “‘총회장님’(김정은)을 남쪽에서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자, 자통 조직원이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낫다’, ‘리설주 여사나 현송월 단장이 이미지 관리를 좋게 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북측은 해당 내용을 보고서에 담도록 지시했다.

북한은 자통 간첩단을 통해 조직적인 윤석열정부 반대 시위를 지시했다. 지난해 3월 8일 북한 문화교류국에 보고된 암호 지령문을 해독한 결과 "윤석열 역도놈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2의 촛불국민대항쟁을 일으키는데 목표를 두고… 산별노조들과 농민운동단체들, 청년학생단체들을 내세워 촛불시위와 성명발표, 촛불문화제 등 윤석열 역도의 퇴진을 요구하는 여러 형식으로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반대로 김 위원장에 대해선 우호적 여론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벌였다. 2018년 11월, 문재인정부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논의하던 당시 자통 조직원들은 ‘김정은 서울 방문 환영’에 주력했다. 검찰은 이들이 “북한의 의도대로 각계각층, 지역별로 환영 기구를 구성한 뒤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등으로 김정은에 대한 흠모 열기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적시했다.

北, 국내 정치 상황 파악해 여론조작 시도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서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뉴스1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서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뉴스1

북한이 남한 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여론 공작을 지시한 사실도 파악됐다. 2021년 7월 2일 북한이 내려보낸 지령문에는 “최근 보수야당(국민의힘)이 30대의 정치 애숭이인 이준석을 당대표로 내세운 이후 혁신과 변화를 떠들어대면서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사회각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면서 “이사회(간첩단)에서는 지역 민중들 속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차단하기 위한 실천활동을 공세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자통 간첩단 역시 국내 정세를 북한에 보고하는 데 주력했는데, 지난해 8월 30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핵관’ 사퇴론이 대두되고 이준석 전 대표 문제 등 갈등은 계속”이라며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은 비공개 자리에서 비판을 쏟아냄. 공개 비판은 안 할 거라고 함” 등 출처가 불분명한 미확인 정보들을 보고서에 썼다.

검찰에 따르면 북한은 민노총 등 주요 노조 내부에 간첩단 조직원을 심으라고 지시했다. 2021년 3월, 북한은 “현재 민노총 주력은 1980년대 중엽 노동운동에 합류하였던 50대 이상의 조합원들이므로 세대교체 문제는 불가피한 과제”라고 지적하며 “20대, 30대의 젊은 조합원들은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풍조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하여 계급의식, 단결의식이 부족하고 정치투쟁보다는 임금인상과 같은 생존권 해결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 사태가 지속되는 경우 민노총의 조직적 지반은 심히 약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민노총의 젊은 조합원들속에서 발굴육성하여 이사회(간첩단)에 망라시키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야겠다”고 포섭을 지시했다.

자통 조직원들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실제 접선할 때 우리 국정원 등 정보기관 미행을 피하기 위해 보안규칙 등을 정해놓고 움직였다. 구체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출입을 반복해 미행을 따돌려야 한다”거나 “관광지도를 들고 와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북한 공작원을 확인하라”, “약속된 번호로 전화를 하면서 이쪽은 ‘권’이고 저쪽은 ‘박’이다” 등이었다. 국내 조직원끼리 만남도 스터디카페나 대학교 등 의심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골랐다. 이들은 “보고자료가 저장된 이동식 저장매체(USB)는 가방에 넣고, 수사기관에 발각될 경우 부숴서 삼켜야 한다”는 수칙을 공유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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