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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기시다의 입 주목…'물컵 나머지 절반' 채울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1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보다 진전된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보다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다면 정부가 그간 촉구해온 '물컵의 나머지 절반'을 채워나가는 조치가 될 거란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지난 6일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 이후 기시다 총리는 국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답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상도 이날 같은 입장을 밝히며 '1998년 10월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했다. 다만 해당 선언에 명시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는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상 모두 실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한국 측에선 같은 의미더라도 기시다 총리가 이번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 등에서 본인의 입으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시다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한 과거의 역사 의식을 계승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며 "그 이야기가 오는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전향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별도의 유감이나 사과 표명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세부 내용을 굳이 반복해 언급하지도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12일 일본 지지통신은 "국내 보수파를 배려해 새로운 사과는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16일 조간신문 1면에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은 한국 정부가 국익의 관점에서, 국민을 위해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며 일본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일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16일 조간신문 1면에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은 한국 정부가 국익의 관점에서, 국민을 위해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며 일본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13일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전달 대비 5%p 상승한 41%였다.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가 주요 반등 요인 중 하나로, 기시다 내각으로선 당분간은 지지율 회복 국면을 유지하고 싶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다음 달 통일지방선거, 중의원 보궐선거 등을 앞두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회담 준비 기간이 짧았던 만큼 "별도의 공동 선언도 없을 것"이라고 대통령실이 지난 15일 밝혔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관계 개선에 집중한 뒤 2025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에 맞춰서 윤석열-기시다 공동 선언을 발표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대통령실은 과거사에 하나하나 얽매이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협력에 더욱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강제징용 배상의 책임이 있는 피고 기업의 호응 수준도 관건이다. 이르면 이번 정상회담 직후 두 피고 기업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이 조성할 '미래청년기금'에 참여하겠다는 발표가 나올 수 있다. 피고 기업의 자금이 '제3자 변제'의 주체인 일본강제동원지원재단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게 일본 측의 강경한 입장인 만큼 현재로선 "미래청년기금 참여가 피고 기업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최대치"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청년기금 참여가 피고 기업에 대한 '최종적인 면죄부'가 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법안 마련 과정에서 일본 피고기업이 과거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표명조차 하지 않은 책임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며, 적절한 시기에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를 통해 피해자와 유족에게 입힌 상처와 고통을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청년기금도 단순히 일회성 교류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되며 피해자, 유족, 후손들에 대한 장학, 교육, 취업 관련 프로그램 등 유족 지원 사업 등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번 윤 대통령의 방일을 기점으로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사실상 복원됐다고 보고 있다. 교도통신은 14일 "기시다 총리가 5월에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후 올해 여름에 한국을 답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교가에선 한국 등을 포함해 G7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일본의 강경한 기존 입장이 한·일 관계 개선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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