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공직으로 간 아가동산 변호사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한국의 주요 사이비종교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로 연일 시끄럽다. 농락당한 여성 알몸을 노출하고 외설적 대화 녹취를 반복적으로 재생한 탓에 흥행만 노린 '다큐 포르노'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외부인은 알 수 없는 교단 내 성폭력과 재산 갈취, 노동 착취 등을 당사자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사이비 교주를 향한 대중의 분노를 펄펄 들끓게 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1996년 12월 검찰이 김기순씨 등 아가동산 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했을 당시 방송 보도 화면. 무죄로 이끈 민변 출신 변호인 등은 판결 이후 청와대 등에서 주요 공직을 맡았다. [사진 MBC 방송 캡처]

지난 1996년 12월 검찰이 김기순씨 등 아가동산 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했을 당시 방송 보도 화면. 무죄로 이끈 민변 출신 변호인 등은 판결 이후 청와대 등에서 주요 공직을 맡았다. [사진 MBC 방송 캡처]

다큐 공개 전후로 각각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던 기독교복음선교회(JMS)와 아가동산 등 네 사건 모두 끔찍하지만 나는 아가동산 편이 유독 소름 끼쳤다. 친 이모까지 동원해 다섯 살 먹은 낙귀를 각목으로 때려죽이는 장면의 재연이나 아들의 억울함은 외면한 채 교주 김기순을 위해 위증했던 낙귀 엄마가 뒤늦게 후회하며 스스로 양 뺨을 시뻘게지도록 때리는 모습 등 고발의 수위가 높아서만이 아니다. 고통과 죄의식 속에 사는 탈퇴자들과 달리 김기순은 신도 헌금으로 키운 신나라레코드를 여전히 유지하며 부를 누리며 잘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었다. 여기엔 상해치사 공소시효(당시 7년)를 넘겨 8년 만에 기소가 이뤄진 법적 한계에다 실패한 사체 발굴(강미경 사건) 등 검찰의 실책도 한몫했다. 하지만 조세 포탈 등 경미한 죄목으로만 벌을 받은 건 한 김기순 조력자의 표현대로 "유명 변호사"의 공이 컸다.

김기순 살인 무죄 이끈 변호인 #이후 청와대·대법 등으로 옮겨 #피해자 폭로 막는 결과 낳았을 지도

찾아보니 사건이 처음 불거진 1996년 서울지검에서 퇴직한 A 변호사, 그리고 비슷한 시기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B 변호사였다. 막 개업한 '전관' 두 사람은 사시 동기라는 점 외에도 다시 공직에 진출한 경력까지 똑같다. A 변호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 '옷 로비 의혹사건' 특검팀 특검보를 거쳐 노무현 청와대에서 사정 비서관으로 재직했다. 사시 동기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 진보 성향 판사들과 함께 우리법연구회를 만든 B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추천위원과 대북송금 특검보를 거쳐 현직 판사가 맡아온 관례를 깨고 대법원장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B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이고 A 변호사는 범민변계로 분류된다. 민변은 1997년 12월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함께 급성장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엔 '민변 정부'라고 불릴 만큼 숱한 고위 공직자를 배출해 전성시대를 열었다. 두 변호사는 이런 흐름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었다.

1996년 검찰에 자진 출석한 아가동산 김기순씨. [중앙포토]

1996년 검찰에 자진 출석한 아가동산 김기순씨. [중앙포토]

변호사의 사건 수임 자체를 놓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제아무리 악랄한 흉악범이라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변호인은 그런 고객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니 말이다. 또 형사 사건 변호사라고 공직을 맡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이들이 선뜻 공직에 간 선택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이비종교 교인으로 의심받는 이들이 8월 찜통더위에 어린아이를 돼지 축사에 가둬 굶기고 매질한 끝에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를 받은 참혹한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제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도록 법 기술을 구사한 변호사들이 판결 후 검찰·법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요 공직을 맡은 건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당장의 이해충돌은 아닐지 몰라도 숱한 피해자를 양산한 가해자 측 변호인의 공직행 자체가 김기순의 공고한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작용할 수 있어서다. 혹시 아가동산 탈퇴자를 숨게 만들고 추가 폭로까지 막는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까.

지난 2001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김기순 측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아가동산 그 후 5년' 편을 방송 당일 결방시켰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당시 김기순 측 대리인 역시 김대중 정부에서 방송위 방송발전기금위원으로 임명(본인 고사)될 정도로 잘 나가던 민변 언론특위 위원장 출신 C 변호사였다. 이 변호사는 아가동산 보도를 '언론에 의한 살인'이라며 모든 언론사에 관련 기사 삭제를 요구하고, 박원순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과 함께 언론(피해)인권센터까지 만들었다. 언론 보도 피해 구제를 내세웠지만, 김기순이 후원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아가동산을 수사했던 수원지검 여주지청 출신 강민구 변호사는 "법원에서 폭행에 따른 사망은 인정했지만 공소시효 등 법리적으로 무죄를 받았을 뿐인데 당당하게 무죄 운운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고 했다. 평소 피해자의 인권을 앞세우는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김기순의 인권을 앞세워 정작 수많은 다른 피해자 인권을 외면하는 행태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는 24일 아가동산 측이 낸 방송중단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문이 열린다.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여러 의미에서 궁금하다.

본보는 지난 3월 16일, 사이비 종교단체인 '아가동산'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 A,B,C가 민변 소속이었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A변호사는 민변 소속이었던 적이 없어 이를 바로잡습니다. 또 민변 측은 "B변호사는 아가동산 사건의 항소심 판결 종결 시점에 민변에 가입하였으나 이후 탈퇴하였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