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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미 정신과 의사 디클레버가 보는 시진핑

중앙일보

입력

국제 관계는 정치학자들의 영역이지만 국제 관계의 일부는 정치 지도자들을 다룬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심리 프로파일링 및 성격 분석은 외교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으며 케네스 디클레버 박사의 전문 분야다. 미국 CNN에는 ‘푸틴의 정신세계’(Putin's state of mind)를 다룬 기사가 있는데 CNN이 인터뷰한 전문가가 바로 그다.

디클레버 박사는 푸틴뿐만 아니라 북한의 김정은, 중국의 시진핑 등 지도자 심리 프로파일러로 유명하다. 정신과 의사로 2002~2016년 미 국무부 고위 외교관을 역임하고, 미국 정부의 외교관 정신 건강 프로그램 국장을 지낸 디클레버 박사가 보는 시진핑은 어떤 지도자인지 들었다. 시진핑 집권 10년이 넘었지만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아직도 그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케네스 디클레버 박사. 사진 필자제공

케네스 디클레버 박사. 사진 필자제공

최근 하버드대에서는 시진핑의 성장기를 돌아보고 당시 그에게 영향을 준 정치인들과 친인척들을 다룬 세미나가 열렸다. 시진핑의 성장 과정을 반추해 그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퍼즐을 맞추려는 것이다. 시진핑 집권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이런 연구가 진행되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 아직도 그의 성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했을 때 대부분의 분석가는 그가 개혁주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1년 후, 우리는 이제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 우리는 그러한 분석적 실수를 했는가?
사실 2009년 주중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 전문도 그런 중대한 실수를 했다. (그 비밀 전문은 후에 위키리크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은 개혁주의자로 분류되었고 또한 개혁파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협력했다. 그러니 시진핑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의 그림자 안에서 시진핑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가 아버지와 매우 다른 삶의 궤적을 걸은 것을 간과했다.
어린 시절에 그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그의 속마음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기억한다. 시진핑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또는 그가 특정 문제에 대해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아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이는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성격 특성인가 아니면 시진핑에게 있어 두드러지는 것인가?
시진핑은 ‘신중한’(careful) 지도자다. 2000년 중국공산당 공청단 산하 월간지 ‘중화아녀(中華兒女)’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는 것이 유용하다. 그의 청년 시절의 고난과 관리로서의 신념 등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어릴 때 경험이 어떻게 그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된다.
시진핑은 중국의 다른 최근 지도자들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부쩍 강조한다. 21세기인데 이런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드문 일이다. 그는 진정으로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사회주의가 위대하다는 생각을 믿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은 가톨릭 교황에게 ‘당신은 천주교를 정말로 믿습니까?’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내 판단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The answer is yes and no).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데올로기 하나만이 시진핑의 행동과 정책을 추동하는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그것 말고도 민족주의,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무엇보다 중국이 ‘위대한 문명’(a great civilization)이란 것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시진핑은 보수적인 지도자로 알려졌지만, 그 자신은 인기 있는 가수와 결혼하였고, 외동딸을 하버드에 보냈다. 이를 모순적이라고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나는 모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중국 고위 정치인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진핑의 책사로 불리는 왕후닝(王滬寧)도 마찬가지다. 그도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지만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일부 미국 분석가 중에는 중국이나 러시아 혹은 이란 고위층 인사들이 미국에서 생활하면 당연히 서구적 사고와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고 잘못된 생각을 한다. 아내 펑리위안(彭丽媛)과는 정말로 사랑해서 결혼했던 것 같다. 정략적인 결혼이 아니란 말이다. 정략적인 목적이라면 영국 대사를 지낸 고위 외교관의 외동딸이었던 그의 첫 번째 부인과 계속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시진핑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그로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지도자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반부패 사정 칼날을 휘둘러 많은 정치적 경쟁자들과 반대자들을 숙청하기도 했다. 이는 사실 리더십 불안의 징조 아닌가?
나의 분석적 시각에서 보면, 그는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very confident) 지도자 타입이다. 그가 휘두르는 권력을 보면 그는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일 수도 있다. 동시에 그는 무자비한(ruthless) 측면도 가지고 있는 지도자다. 그래서 보시라이(薄熙来), 저우융캉(周永康) 등의 정적을 제거하기도 했다. 그를 직접 만난 경험이 있는 인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articulate) 또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한 개인 안에 이런 복합적인 측면이 함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시진핑은 1975년 중국 명문 칭화(淸華)대학에 입학하는 데, 전 공산당 중앙당교 차이샤(蔡霞) 교수는 시진핑이 ‘칭화대를 뒷문으로 입학했고, 열등감이 크다’고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썼다. 같은 시기에 칭화대를 다닌 한 중국인도 당시 시진핑은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회고한다. 이런 ‘진단’에 문제가 있는가?”
‘완전히 틀린’(dead wrong) 진단이다. 사실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2009년 미국 비밀 외교 전문에서도 시진핑을 ‘평범한 지적 능력’(average intelligence)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했다. 미국에서는 그런 말을 들으면 ‘아이큐 100’ 정도에 ‘고졸 학력’을 연상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진핑은 14억 인구를 가진 복잡한 국가를 지배하는 리더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심리학자가 분석하면 대개 IQ 120 이상, 그리고 가끔 140 이상이 나오기도 한다.
서방 일각에서는 시진핑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그가 사회주의를 진정으로 믿고 이데올로기적 열심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지도자는 자기 일을 ‘신의 부름’으로 삼고 고집이 세서 정책을 좀처럼 변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의하는가?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not entirely). 시진핑은 가장 우선 중국공산당 체제의 산물이다. 그는 ‘중국몽’의 신봉자다. 그런데 ‘중국몽’은 원래 강경파로 유명한 중국 국방대 교수 류밍푸(劉明福) 대령이 2010년 쓴 『중국몽(中國夢)』이란 책의 동일한 이름이다. 시진핑이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다. 시진핑의 책사인 왕후닝이 빌려다가 시진핑 집권의 주요 통치 슬로건으로 차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 주석은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운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동쪽은 뜨고 서쪽은 쇠퇴하고 있다”(東升西降)고 말하면서 미국의 저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했다.
똑똑한 지도자가 왜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가?
매우 똑똑한 사람들도 판단의 사각지대(a blind spot)가 있다. 그것은 개인이 속한 집단의 ‘사회심리’(social psychology)와도 관련이 있다. 양제츠(楊潔篪. 전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도 10년 넘게 미국에서 생활도 했고,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도 미국 대사로 있을 때 미국을 두루 여행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시진핑에게 “미국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판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용기 있게 말했을지 궁금하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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