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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호의 이코노믹스

겨울잠 증시 봄 기지개 켜나…SVB 파산 여파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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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개에 갇힌 2023년 증시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이사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이사

주식 시장에 안개가 짙어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세계 증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미 역사상 두 번째 규모인 SVB 파산에 따라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위축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선 2008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리먼브러더스 사태’ 재연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SVB 사태는 파생상품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리먼 사태에 비하면 자금 흐름이 단순하고 규모도 훨씬 작다. 미 재무부를 비롯한 당국의 적극적인 수습 움직임을 고려하면 ‘리먼 사태’와 같은 글로벌 피해 확산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물론 금융시장의 발작 정도에 따라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행보가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겠지만, Fed의 중장기적 금리 정책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시야를 넓혀보면 증시의 핵심 변수는 역시 미국 물가와 금리로 좁혀진다.

미 소비자물가 6.4% 고공행진
금리 올렸지만 물가 못잡아

Fed 긴축유지, 금리 정점 가시화
현 증시에 금리 상승 우려 반영

국내외 주식매입 자금 대기 중
기업이익 바닥 찍고 회복할 듯

SVB 파산, 리먼 사태에 비하면 단순

깨진 유리창을 통해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 로고가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깨진 유리창을 통해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 로고가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6.4% 오르고,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4.7% 뛰었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남에 따라 우리 주가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좀 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미국 금리는 물가와 비교해서 상당히 낮다. 기준금리 제도가 도입된 1954년 이후 미국 기준금리가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밑돈 것은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이후가 유일하다. 또 10년 만기 미국 국채수익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한 것은 코로나19 펜데믹 이후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금리 인상 정책은 비정상을 정상화해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이 멈추고 인하로 방향을 트는 본격적인 전환은 물가상승률이 기준금리를 확실히 밑돌아야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국 금리의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세계적으로도 높은 금리가 상당 기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금리 역시 추가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고금리가 지속하면 경기는 둔화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1954년부터 2019년까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10차례의 기준금리 상승은 매번 미국 경제의 성장률을 낮췄다. 그때마다 한국의 경제와 주가도 부담받았다.

또 미국의 금리 상승은 달러가치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이는 환율 등락에 민감한 외국인의 주식매수 입지를 좁힌다. 예컨대 지난해 7월부터 외국인이 추세적으로 주식을 매수했지만, 자세히 보면 외국인은 달러 약세 기간엔 주식을 매입했고, 달러 강세 기간엔 매도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증시는 미국의 금리 상승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금리 상승에 따른 추가부담 제한적

그러나 현재로선 높은 금리가 증시에 주는 부담은 한시적이고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Fed의 강한 긴축 의사다. SVB 파산이라는 악재가 돌발 변수로 등장했지만,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최근 언급한 매파성 발언이 시사하듯 미국이 과감하게 금리 인상을 단행할수록 지금(4.5~4.75%)부터 정점까지 금리 인상 기간은 단축되게 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향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일정과 빅스텝(한번에 0.5%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을 고려하면 정점은 대략 6~7월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증시 입장에선 오히려 불확실성이 빠르게 제거되는 셈이다. 덧붙여 1984년 이후 시중금리 정점이 기준금리 정점보다 0~4개월 앞섰다는 점도 고려할 사안이다. 결국 Fed의 금리 상승 기세가 매섭다고 해도 그것이 주가 압박 요인으로 작동할 기간은 길지 않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금리 인상 자체의 파괴력도 예전 미국 사례를 통해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10차례의 기준금리 상승기에서 미국 주가가 이번보다 더 크게 떨어진 것은 네 차례였다. 그중 세 번은 금리 상승과 내·외적 충격이 겹쳤다. 1970년대 초 1차 석유파동, 2000년 IT 거품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다. 세 경우는 금리 자체보다 충격 요인이 주가 낙폭을 키웠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상적 경기순환 과정의 6차례 기준금리 상승은 주가를 심하게 떨어뜨리지 않았다. 6회 중 5회의 주가 하락률은 20% 안쪽이었다. 미국 기준금리 상승률이 22%까지 치솟았던 1980년 주가 하락률도 지난해 1~10월 하락률과 같은 28%였다.

이번 SVB 사태의 파괴력이 앞선 세 차례의 대형 충격과 견줄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증시 움직임은 앞선 6차례 통상적인 경기 순환과정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경제 비중 하락세

증시에 긍정적인 요인 하나는 증시에 뛰어들 자금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선 환율에 민감한 외국인 자금을 살펴보자. 상반기 전후로 미국의 금리 상승이 마무리되면, 달러가치 상승도 누그러질 것이다. 특히 달러가치 장기추세엔 금리 못지않게 세계 경제 규모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영향을 미쳐왔는데,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경제에서 미국 비중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정체·하락한다.

이를 고려하면 달러가치 정점은 달러당 1400원을 훌쩍 넘었던 지난해 10월일 가능성이 크다. 추세적으로는 달러가치 하락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외국인의 한국 주식 추가 매입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외국인은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긴 지난해 7월부터 국내 주식을 17조원가량 매입했다. 1300원 이상은 과도한 원화가치 하락으로 본 것 같다.

게다가 국내 주식 매입 여력도 적지 않다. 현재 예금금리에서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공제하면 실수익률은 2%대에 불과하다. 이자 소득이 낮으면 자금은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기 마련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중반 이후 고객예탁금이 소폭이지만 늘었다. 국내 증시의 과거 8차례 주가 바닥권에서도 고객예탁금이 점증했다. 이번에도 주식매수기반이 점차 두터워지는 신호일 수 있다.

기업 이익은 1분기 이후 반등할 듯

주가의 추세적 등락은 늘 상장사 이익 증감 추세에 따랐다. 금리 상승 여부에 제약받기보다 이익 수준이 낮더라도 추세적으로 증가하면 주가는 상승했다. 반대로 이익이 추세적으로 감소하면 주가는 하락했다. 2000년 이후 8번의 주가 바닥은 기업 이익이 저점을 기록한 분기 2개월 전 혹은 2개월 후에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금리 역할은 주가 등락 폭 확대였다. 오직 이익만이 주가의 추세적 등락 방향을 결정한 것인데, 2020년 주가폭등이 그 사례다. 당시 기업 이익은 이전보다 적었지만, 추세적 이익 증가가 주가를 상승으로 이끌었다.

이런 주가 속성 때문에 기업 이익이 언제 바닥에 도달할지가 주목되는데, 증권업계는 올해 상장사 이익 바닥을 1분기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기업 이익 역시 올해 1분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의 비용축소, 제품가격 인상 등이 이익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애널리스트들의 낙관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기업 이익이 연내 바닥을 칠 가능성은 다분한 상황이다.

세계 경기 회복세도 긍정적 요인

또한 한국 기업 이익과 직결된 세계 경기의 안정 가능성이 국제기구 자료에서 엿보인다. IMF는 지난 1월 올해 세계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9%로 높였다. 수출의존형 한국경제에 고무적 사안이다.

OECD(G20 기준) 소비자신뢰지수도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완만하지만 회복되었다. OECD 경기선행지수와 기업신뢰지수는 여전히 하락 중이지만, 두 지표의 둔화속도는 현저히 줄었다. 이런 양상은 글로벌 경기가 상향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94년 이후 세 지표 중 한 지표라도 긍정적이면 세계 주가는 나쁘지 않았다.

최근 주요국 주가 추이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영국·프랑스 등 여러 유럽국가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도·중국·일본 등 주요 아시아 국가와 캐나다·멕시코 등 미주지역 주가도 추세적 하락에서 벗어나 안정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주가 상승 과정에서 한국 주가가 대체로 후행했던 것을 고려하면, 해외의 주가 추이는 우리 주가에 긍정적이라 하겠다.

증시에 낀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미국발 고금리로 인한 경기 둔화와 환율 불안 우려가 여전하다. SVB 사태 같은 깜짝 변수의 돌출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내외 금리는 정점을 향해 바짝 달려가고 있고, 세계 경제는 안정을 되찾는 중이다. 주가 등락 방향을 결정짓는 기업 이익도 수준은 낮지만, 연내에 회복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조금은 여유를 갖고 주가 추이를 지켜봤으면 한다.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