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삿날이 지옥됐다"…초유의 '입주중단' 강남 개포자이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3일 입주가 중단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의 모습. 재건축 전부터 단지 안에 있던 어린이집(경기유치원)이 보상을 요구하며 법원에 신청한 준공인가 처분 효력정지가 받아들여져 13일부터 24일까지는 열쇠 불출이 불가해 입주를 할 수 없게 됐다. 연합뉴스

13일 입주가 중단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의 모습. 재건축 전부터 단지 안에 있던 어린이집(경기유치원)이 보상을 요구하며 법원에 신청한 준공인가 처분 효력정지가 받아들여져 13일부터 24일까지는 열쇠 불출이 불가해 입주를 할 수 없게 됐다. 연합뉴스

“오늘 이삿날인데 당장 어디로 가야 하나요.”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 단지 내 입주지원센터 앞에서 만난 이모씨의 하소연이다. 이씨는 “이삿짐 다 싸놓고 오늘 입주만 기다렸는데 언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도 없다”며 “이삿날이 지옥이 됐다”고 난감해했다.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입주 예정자는 “살던 집을 비워줬는데 키 불출(열쇠 지급)이 안 돼 새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 길거리로 내몰렸다”면서 “재건축조합에 수차례 연락했는데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며 보관 이사를 알아보고 호텔에 머물면 관련 비용을 준다는 답만 들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13일 문 닫은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입주지원센터 앞에 입주예정자들이 모여있다. 곽재민 기자

13일 문 닫은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입주지원센터 앞에 입주예정자들이 모여있다. 곽재민 기자

이날 아파트 입주지원센터 정문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입구엔 ‘서울행정법원 결정에 따른 강남구청의 사전입주 정지 명령에 따라 3월 24일까지 임시방문, 잔금납부, 키 불출이 불가하다’는 공고문만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지난달 28일 부분준공인가를 통해 입주를 끝낸 주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오전 단지에서 만난 한 입주민은 “입주는 했는데 건물 사용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 나가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며 “3300여 가구가 오갈 데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한숨을 쉬었다. 공고문을 보거나 입주 중단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은 아파트 단지 인근 상가에 있는 개포주공4단지재건축정비사업조합 사무실로 몰려가기도 했다.

재건축조합과 단지 내 어린이집(경기유치원)의 소송으로 촉발된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입주 중단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재건축 공사 전 단지 내에 있던 유치원이 재건축조합이 수립한 관리처분계획이 법에 어긋났다며 이를 시정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오는 24일까지 준공인가 처분 효력정지를 신청하면서다.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단지 내 있는 경기유치원. 곽재민 기자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단지 내 있는 경기유치원. 곽재민 기자

“알박기” vs. “단독필지 공유 권리 침해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지난 10일 오후 조합 측에 입주 중지 이행 명령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6일 유치원측이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낸 준공인가 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유치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3일부터 24일까지 입주중단으로 이사를 취소해야 하는 입주 예정자만 400여 가구에 달한다. 입주 예정자들은 이사업체와의 계약을 취소하고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기간 동안 해당 아파트에 방문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 사태의 원인을 두고 조합과 유치원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조합측은 유치원의 ‘알박기’라고 일축한다. 조합측은 지난달 법원에 낸 탄원서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유치원 건축비와 교구비를 무상으로 지급했는데도 입주 방해를 목적으로 무차별적인 재판 청구, 가처분신청, 민원 제기로 오랜 시간 사업이 지연돼 사업비 증가와 대출이자 납부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관리처분취소에 의한 이전 등기 지연으로 또다시 재산권이 침해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기유치원측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지향은 “보상 문제나 임대료 문제가 아니다”라며 “단독 필지였던 유치원을 재건축조합이 일방적으로 3375가구 아파트 소유자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처리하려고 했기 때문에 권리가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염려돼 부득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13일 입주가 중단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의 모습. 연합뉴스

13일 입주가 중단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의 모습. 연합뉴스

 전세 대출도 막혀…절반 달하는 세입 가구도 비상 

피해는 고스란히 이사 준비를 하는 입주 예정자가 떠안고 있다. 특히 전체 가구의 50%에 달하는 전·월세 집에 비상이 걸렸다. 준공승인이 안 나면 전세자금대출이 안 되기 때문에 대출을 통해 전세자금을 마련하려던 전세 임차인은 물론 임대인도 계약 파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날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한 임대인은 “84㎡ 기준 전세가 13억원 정도선인데 계약금만 1억 3000만원”이라며 “계약 파기를 하면 계약금의 두배를 물어줘야 하는데 입주 지연 책임을 누구에게 따져야 하느냐”고 난감해했다.

전세 계약을 한 입주예정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입주를 앞둔 정모(42)씨는 “당장 전학해야 하는 초등학생들이 입학을 못 하고 무단결석 처리 중인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 전학을 시킬 수 있겠느냐”며 “조합과 유치원의 갈등이 지속하면 나머지 미입주 2500여 가구의 입주가 미뤄질 텐데 아이들 학교 전학은 물론 이사와 대출 등 사회적 혼란은 어떻게 보상받느냐”고 반문했다.

시공사인 GS건설도 직접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GS건설 관계자는 “조합과 유치원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인데 시공사인 우리에게 항의하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라며 “변론기일까지는 사태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애꿎은 일반분양자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이 2심에서도 패소한다면 원칙적으로 이미 입주한 사람도 짐을 싸서 나와야 하는 것”이라며 “입주가 지연되면 될수록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조합에서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소송 문제로 서울 강남 개포자이 프레지던스의 입주 중단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단지 내 입주지원센터에서 입주자들이 열쇠 불출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송 문제로 서울 강남 개포자이 프레지던스의 입주 중단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단지 내 입주지원센터에서 입주자들이 열쇠 불출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합원 “강남구청 상대로 민원 및 소송 제기”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9시 강남구청 앞에 모여 조성명 구청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조합원들은 “입주민 중 조합원뿐 아니라 일반분양자와 임차인이 있어 향후 조합과 강남구청을 상대로 민원과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계약 위약금 분쟁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주민이 입주한다고 해도 경기유치원이 제기한 준공승인 무효신청의 실익이 없겠지만, 주민들에겐 가혹한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우리도 황당하지만 법원이 통보한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 법원이 빨리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