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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장사'가 고객 돈 지켰다?…국내은행 SVB 위험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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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에 비친 실리콘밸리은행 로고를 표현한 삽화. 로이터=연합뉴스

깨진 유리에 비친 실리콘밸리은행 로고를 표현한 삽화.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주된 원인이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인 만큼 국내 은행들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향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이긴 하지만 파급 효과가 크지 않을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SVB가 고위험 벤처기업에 특화된 은행이었던데다 국내은행들의 전반적인 건전성도 양호하기 때문이다.

SVB사태는 고금리에 재무구조가 악화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뱅크런(고객의 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하면서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막대한 시중자금이 기술기업에 몰리면서 SVB 총예금은 2021년 한해 86% 급증했다. SVB는 늘어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미 연준이 빠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자금줄이 막히자 기술기업들이 예금 인출을 늘렸다. SVB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 등 보유자산을 헐값에 매각하면서 큰 손실을 입게 됐다.

국내은행도 팬데믹을 거쳐 금리 인상기에 예금이 불었지만 SVB와는 상황이 다르다. 유가증권 등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기보다는 대출을 늘려 예대마진(대출금리-예금금리 격차)을 끌어올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수신(예금ㆍ작년 12월말 잔액 2243조5000억원)은 지난해 107조4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조7000억원 감소했지만, 은행 기업대출(작년 12월 말 잔액 1170조3000억원)은 104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자 장사’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고객 돈을 지키는 데는 유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주요은행들도 지난해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줄었지만 손실을 본 곳은 없었다.

대출을 늘렸지만 여전히 건전성은 양호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25%에 불과하다. 절대적 수준 자체가 아직은 매우 낮은 셈이다. 다만 수출ㆍ투자 부진으로 기업이 이자 부담 등을 버티지 못할 경우 이러한 기업에 대출해 준 은행 건전성도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선 SVB 사태와 같은 뱅크런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SVB는 주 고객이 기업이다보니 예금자보호한도(25만달러)를 넘는 고액 예금 많았던 반면, 국내 은행은 기업보다 개인, 고액보다 소액 예금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저축성예금 계좌 238만6440개 중 99.5%인 237만4540개 계좌가 상대적으로 소액인 1억원 이하로 집계됐다. 국내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한도는 5000만원이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SVB 파산의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고금리 부담에 취약한 자산 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이라면서 “SVB는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현금이나 현금등가물의 비중이 총자산의 6.5%에 불과했다”고 분석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도 “SVB는 국내 은행의 사업모델과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은행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했다. 한국은행 역시 이날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연 '시장 상황 점검 회의'에서 SVB 사태가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각심을 높이고 시장 변동성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연구원은 “아직 전체 은행권에서는 현금이 풍부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분명 감소하는 추세가 형성돼있다”면서 “은행업의 업황 부진과 높아진 자금 조달 비용, 그리고 금융권 내의 현금 조달 능력 위축 등의 조건이 동시에 갖추어지면 빠른 속도로 신용리스크가 확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연구원도 “자본력과 건전성이 취약하고 SVB와 유사한 자산 구조를 가진 지역은행들은 뱅크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연준이 개입하면서) 사태가 조기 진압되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은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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