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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근로시간저축에 엇갈리는 스타트업 “환영” vs ”소규모엔 비현실적”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일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발표를 두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계에서 기업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특정 시기 몰입 노동이 필요한 기업들은 경직된 주 52시간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 반기는 반면, IT 노동조합과 소규모 스타트업 직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특히,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갑론을박의 핵심.

이게 왜 중요해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지난달 2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 근로시간 제도개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지난달 2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 근로시간 제도개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지난달 28일 이영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벤처기업·스타트업 대표 등과 근로시간 제도개편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업 대표들은 “경직된 주 52시간 제도로 인해 생산성이 저하되고 마음 놓고 일을 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계도 기간’ 1년을 부여하면서 올해 형사 처벌은 면하게 됐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주 60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한 52시간 적용 예외 기간이 지난해말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이런 현장 목소리는 고용노동부에도 전달됐다.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권고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이번 정부 발표안에서 구체화됐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개편안은 주 12시간으로 묶여있던 연장 근로를 월(52시간), 분기(140시간) 반기(250시간), 연(440시간) 단위 중 노사합의로 고를 수 있게 바꿨다. 근무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부여할 경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69시간(휴게시간 등 제외)으로 늘어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이번 제도 개편의 목적에 대해 “근로자의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 보장”이라고 밝혔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보상을 근로시간 계좌에 저축해뒀다가 필요한 경우 휴가 등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노사가 합의할 경우, 연장 근로 등 근로의 대가를 임금 대신 휴가로 쓸 수 있다.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와 같은 자율과 선택에 기반한 근로시간 제도가 운영된다면 근로자 선호에 따라 주4일제, 주4.5일제로 일할 수 있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녀 등 하원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 ‘워라밸’이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제주 한 달 살기 등 장기 휴가 활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초창기 스타트업이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할 경우, 프로젝트 기간 몰입 노동 이후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대신 장기 휴가를 제공하는 식으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혜택은 누가

지난달 2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 근로시간 제도개편 간담회.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지난달 2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 근로시간 제도개편 간담회.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납품기일을 맞춰야하거나 해외와 소통하는 수출 중소기업와 스타트업, R&D(연구·개발) 기업 뿐만 아니라 몰입 노동을 통해 특정 시기 J커브 성장이 필요한 창업 초기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지난달 중기부 간담회에서 로봇제조 스타트업 코아이의 박경택 대표는 “지난해 10월 초 쿠웨이트에서 3주 동안 장비 7대를 수출하기로 계약을 했는데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전 직원이 밤샘 작업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관계자는 “무한정 노동이 아니라 꼭 필요할 땐 집중 노동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직원들 우려는

지난 6일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붙은 취업 공고. 뉴스1

지난 6일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붙은 취업 공고. 뉴스1

일부 게임사나 IT 스타트업 직원 사이에서는 “제대로 운영만 되면 프로젝트 단위로 몰입해 일한 뒤 장기 휴가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는 반응도 있다. 문제는 현실 가능성이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카카오크루유니언) 지회장은 “있는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마당에 저축한 근로시간을 과연 사용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노조가 없는 소규모 사업장은 더욱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우려를 의식한 정부는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꼽히는 포괄임금제의 오남용 근절을 위한 기획 감독을 해 곧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야간작업건강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급한다. 또한 중기부 등 의견을 반영해 업무에 상당한 재량이 인정되는 고소득·전문직, 일정 규모 이상 기분을 가진 스타트업 근로자 등에 근로시간 적용 예외를 두는 일명 ‘화이트 이그젬션’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17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