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만으로 끝난 최저임금 심의/정순균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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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12일 최저임금심의위원회를 통과하고도 사용자측의 이의제기로 한달 넘게 노동부 통고를 미뤄온 내년도 최저임금안이 22일 열린 5차 노·사 공익대표 전체회의를 거쳐 마침내 노동부에 통고돼 최종확정을 눈앞에 두게됐다.
이미 법정시한(9월28일)을 훨씬 넘기긴 했지만 앞으로 이의신청·재심 등 법적절차에 융통성을 갖는다면 내년 1월1일부터의 시행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이날 최심위 회의실에서 열린 5차 회의를 지켜보며 기자는 『이렇게 「국민학교 어린이회」수준만도 못한 실효성 없는 회의를 할바에야 무엇 때문에 한달여의 시간만 낭비했을까』하는 의아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당초 이 회의는 지난달 12일 4차회의 때 사용자측이 퇴장한 가운데 근로자·공익 대표들만으로 내년도 임금안이 결정돼 버리자 사용자측이 절차상 하자를 내세워 이의를 제기,사용자측 주장을 듣고 하자여부를 따지기 위해 마련됐다.
이 때문에 결정 즉시 정부에 통고해야 하는 내년도 임금안도 통고를 미룬 채 한달이 넘게 최심위 사무국 서랍속에서 낮잠을 자야했다.
이날 한달여만에 얼굴을 마주한 노·사위원들 사이에는 지난 4차 회의때의 퇴장·표결강행으로 쌓인 감정의 앙금이 채 씻기지 않은듯 다소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시작됐다.
사용자측은 『4차회의는 사용자측의 참여가 배제됐고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2회 이상 출석요구도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절차상 하자를 주장했고 근로자측은 이를 반박하며 설전을 벌였다.
사용자측은 한술 더떠 『이미 결정된 18.8%(시급기준) 인상안은 우리 경제현실에 비춰 지나치게 높다』며 새로운 임금안을 재심의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법적하자가 『있다』,『없다』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설전을 벌이기 3시간여. 끝내 우려되던 고함이 터져 나오고 분규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욕설과 삿대질이 난무한 가운데 폐회를 알리는 의사봉 소리도 없이 노·사·공익위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당초 의제에도 없던 새로운 임금안을 들고나와 위원직사퇴 으름장을 놓으며 재심의를 「구걸」하는 사용자측의 안간힘은 상대방에게 설득력을 갖기엔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또한 상대방의 목소리에 애당초 귀를 틀어막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식으로 고함치고 욕지거리를 쏟아붓는 근로자위원들의 행동도 이날 회의를 파국으로 몰아붙인 한 원인이 되고 말았다.
노사간 불신의 골만 깊게한 채 흐지부지 끝나버린 회의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성숙한 노사관계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른 것 같은 씁쓸한 여운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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