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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年500개 문닫는다…저출산 만큼 무서운 이 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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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학기를 맞은 지난 3일, 마포구 성산동 한 문구점의 모습. 김민정 기자

새학기를 맞은 지난 3일, 마포구 성산동 한 문구점의 모습. 김민정 기자

4년 만의 ‘노마스크 대면 입학식’ 이튿날인 지난 3일 오후 2시 찾은 서울 성산동의 한 초등학교 문구점 앞은 한산했다. 3·4학년 학생들의 하교시간이었지만, 문구점을 찾은 학생은 2명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37년 간 문구점을 운영 중인 김모(66)씨는 “지금은 새학기라 그나마 조금 바쁜 것”이라며 “일주일이면 이것도 다 끝난다. 문을 닫은 문구점들이 수두룩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업태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학년 별로 필요한 학습용 준비물을 챙기는 게 문구점의 ‘숙제’였지만, 요즘은 학용품을 찾는 학생이 드물다고 한다. 실제 이날 문구점을 들린 인근 초등학교 6학년 A양(13)은 “틱톡에서 유행하는 '테이프 공' 장난감을 사러 왔다”며 장난감 진열대만 살핀 뒤 가게를 떠났다. 김씨는 “10분 거리인 가좌역 인근에 다이소가 들어선 것도 타격이 컸다”며 “다이소 앞의 대형 문구점 두 곳도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 도매가보다도 다이소가 싸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학 첫날인 지난 2일 오후 찾은 서울 대치동의 초등학교 인근 문구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가게 안에 아폴로 같은 이른바 골목식품과 실내화가 잔뜩 진열돼있었지만, 이를 구매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샤프나 수첩 등 학용품은 빛 바랜채 먼지만 쌓여있었다. 이따금 들르는 학생들은 가게 앞에 진열된 뽑기 기계에 있는 장난감을 살펴보다 발길을 돌렸다. 사장 A씨는 “그래도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있으니 코로나 때보단 괜찮아진 편”이라며 “학용품은 인터넷에서 사니 결국 장난감 위주로 판매한다. 준비물도 문구점에서 사던 시절이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5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초등학교 인근 문구점 앞에 폐업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김민정 기자

5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초등학교 인근 문구점 앞에 폐업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김민정 기자

문구소매점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문구소매업 매장은 2012년 1만4731개에서 2019년 9468개로 줄었다. 현재는 8000여개 정도만 운영 중이라는 게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측 설명이다. 매년 문구점 500곳 이상이 폐업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구점의 쇠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업계에서는 2011년부터 시행된 교육청의 ‘학습준비물 지원 제도’를 꼽는다. 제도 시행에 따라 일선 학교 측이 학습용 준비물 상당수를 최저가 입찰로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학생들이 예전처럼 문구점에서 모든 준비물을 구매할 필요가 없어지는 등 수요 자체가 줄었다는 분석이다.

학교 앞 문구점의 주 고객인 초등학생 숫자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330만 명이던 국내 초등학생 수는 2020년 269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2021년에는 267만 명, 2022년 266만 명 등 전반적 감소세다. 이밖에 네이버·쿠팡 등 온라인 쇼핑과 다이소 등 생활용품 체인점의 성장, 무인 문구점의 확산 등 시장 환경 변화도 문구점 쇠퇴의 원인으로 꼽힌다. 장낙전 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학생들의 감소세, 제도적 원인 등 여러 방면에서 굉장한 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1월 22일에는 서울 연희초등학교 앞에서 30년간 영업하던 한 문구점이 문을 닫았다. 지난 3일 폐업한 문구점에 인접한 곳에서 손자를 기다리던 박모(63)씨는 “아들도 이 학교를 다녀 문구점 사장님이 아이들 준비물을 다 챙겨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웃사촌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2011년 이 학교를 졸업한 정모(23)씨도 “아침마다 준비물 사는 학생들로 북새통에 발 디딜 틈 없었는데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장소가 사라졌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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