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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애플페이 출시하는 애플 “韓지도 반출하고 싶다” 요청에 정부 “No” | 팩플

중앙일보

입력

애플이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신청했다가 거절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6년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을 불허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무슨 일이야

5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애플이 지난달 2일 국토지리정보원에 5000대 1 축적의 국내 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에 반출할 수 있게 허가에 달라고 요청했으나, 2주 후 한국 정부가 ‘반출 불가’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플이 대한민국 정부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국방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대다수가 반대해 불허를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우려를 애플이 해소할 수 있다는 근거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 법상 국토교통부 장관 허가 없이는 2만5000대 1 축적보다 세밀한 지도의 국외 반출이 불가능하다. 반출 하려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국토지리정보원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 협의체가 심의를 거쳐 결정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반출이 허용된 적은 없다.

애플은 왜?

애플이 한국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요청한 것은 ‘애플페이’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애플은 지난달 8일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를 한국에 출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보기술(IT)·금융 업계에선 이르면 이달부터 아이폰 사용자들이 애플페이로 오프라인 상점서 결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애플은 애플페이를 서비스 중인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는 애플지도에 애플페이 가맹점을 표시·안내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애플페이 사용자들에게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국 지도 데이터를 미국 본사 혹은 해외 데이터센터에 갖다 쓰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애플의 차량용 운영체제(OS) 시장이 꼽힌다. 애플은 글로벌 차량용 OS 사업을 두고 구글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 다음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자동차 전자장치(전장) 시장에서도 OS를 차지해야 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쪽은 구글이다. 구글의 차량용 OS인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는 볼보·벤츠·BMW 등 완성차 업체들에 올해 말부터 순차 탑재될 예정이다. 애플의 카플레이는 현재 인포테인먼트 수준이나, 애플도 지난해 6월 개발자 콘퍼런스 WWDC에서 차세대 버전을 공개한 바 있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애플이 한국에서도 애플페이와 연결해 위치 기반 서비스를 확장하거나, 구글에 대적해 카플레이·자율주행 등 경쟁력을 키우려면 지도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에 지도 반출을 요청한 이유를 물었으나, 애플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애플 전엔 구글이

국내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시도한 건 구글이 먼저였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9년에 걸쳐 문을 두드렸다. 특히 2016년에는 여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구글 지도 기반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지도 데이터를 반출해달라는 구글의 주장이 힘을 얻었기 때문. 그러나 결국 불발됐다.


◦ 당시 구글은 왜 실패?: 구글은 국내에서 안드로이드 오토, 자율주행차, 3차원 지도, 길 찾기 등 지도정보 기반 서비스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한국의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구글이 반출을 요청한 지도는 SK텔레콤 내비게이션 ‘티맵’에 사용된 것으로, 이미 국가 주요시설에 대한 보안 처리가 돼 있어 안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반(反) 구글 진영은 구글이 운영 중인 위성사진 서비스 ‘구글어스(Google Earth)’에 5000분의1 지도를 결합하면 국가 주요 기관의 위치가 노출돼 안보 위협이 커진다며 반대했다. 국내 IT 기업들은 모바일 OS를 장악한 구글이 지도까지 가지면, 토종 업체들의 고사가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당시 정부는 2개월 간 검토 끝에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을 불허했다. 구글은 2016년 이후 한국 정부에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을 다시 신청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구글이나 애플 등 해외 사업자는 티맵의 지도 정보를 받아서 국내 사용자들에게 관련 서비스를 하고 있다. 다만, 라이선스 문제 등으로 각사의 기준에 맞는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지도에서 본 용산가족공원 인근 위성사진.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이 지역 일대의 세부 공간정보가 모두 숲으로 표시돼 있다. [네이버지도 캡쳐 화면]

네이버지도에서 본 용산가족공원 인근 위성사진.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이 지역 일대의 세부 공간정보가 모두 숲으로 표시돼 있다. [네이버지도 캡쳐 화면]

구글어스를 통해 본 용산가족공원 인근 위성사진. 주요 건물의 위치가 자세히 나와 있다.[구글어스 캡쳐 사진]

구글어스를 통해 본 용산가족공원 인근 위성사진. 주요 건물의 위치가 자세히 나와 있다.[구글어스 캡쳐 사진]

이게 왜 중요해

정부의 방어 덕에 ‘지도 주권’을 사수한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포털들은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종 사업을 확장하며 몸집을 키웠다. 디지털 지도는 단순히 길 안내가 아니라, 자율주행·증강현실(AR)·가상현실(VR)·디지털트윈 등 신사업 확장의 핵심 데이터 자원이기 때문. 일례로 네이버는 지도를 기반으로 쇼핑·장소 추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또 자체 제작한 고정밀(HD) 지도를 바탕으로 서비스 로봇,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스마트 빌딩, 스마트 시티 등 네이버의 ‘새 먹거리’를 찾아 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면서 정밀 지도 데이터의 산업적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고 본다. 지리정보 소프트웨어(GIS) 기업을 운영하는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는 “자율주행차·AI·드론·AR 등 미래 산업의 핵심이 전부 디지털 지도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정구민 교수는 “지도 데이터에는 사람의 이동·소비 등 생활행태 정보까지 다 들어 있다”며 “(지도가 있으면) 결제·커머스·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사업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기 수월하다”라고 말했다. SK텔레콤도 지도 서비스를 기반으로 모빌리티 사업에 진출했다. 내비게이션 티맵 사업부를 지난 2020년 티맵모빌리티로 분사시켜 대리·화물·UAM 등 다양한 이동서비스 관련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 기준 티맵모빌리티의 기업가치는 2조2000억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앞으로는

구글에 이어 애플도 한국 지도 데이터 반출에 실패하면서 지도 논쟁이 7년 만에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이 빅테크로 성장한 현 시점에서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 불허를 고수하는 게 합당한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해외에선 국내 주요 정부기관의 위치를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 반출 금지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김인현 대표는 “이미 빅테크들이 전 세계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데, 한국의 디지털 전략자산인 전자지도를 반출하면 정보독점은 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원한 국내 모빌리티 기업 관계자는 “내수시장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지도 반출을 막았지만, 정작 한국 소비자나 방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는 위치 기반 글로벌 서비스를 자유롭게 쓸 수 없다”며 “소비자 편익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