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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허무한 결말…금리담합 조사 이번엔 '경제 검찰'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은행 때리기’에 ‘경제 검찰’로 통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세했다. 금리 담합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은행권의 금리 담합 여부를 조사하는 건 11년 만이다. 과거 조사 때는 이렇다 할 담합 증거를 찾지 못했는데, 은행권에 대한 압박이 거센 이번엔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은행들은 “담합 여지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시민들이 서울시내 한 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이 서울시내 한 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지난 3일까지 6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에 대한 현장 조사를 했다.공정위는 은행들이 예금·대출 금리를 산정하는 데 있어서 담합을 벌였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과거에도 공정위가 은행권의 금리 담합 여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공정위는 지난 2012년 7월 18일 당시 대출금리 기준으로 쓰였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여부와 관련해 KB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2011년 말부터 조사 개시 전까지 국·공채 등 주요 금리가 일제히 하락했는데, 유독 CD금리만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돼 있었던 게 의혹의 발단이었다. 공정위의 본격 조사에 당시 ‘한국판 리보(LIBOR) 조작사건’(런던 금융시장의 초단기금리 조작 사건)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조사의 결말은 말 그대로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현장조사 이후 4년이나 시간을 끌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지난 2016년 7월 공정위 전원회의는 “담합으로 의심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최종 판단을 내렸다.

이번엔 어떨까? 일단 은행 측은 “담합은 불가능한 환경”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은행의 금리 산정 구조가 담합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은행의 대출금리는 시장상황 및 개별은행의 경영전략 등에 따라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실제 은행의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여기에 우대금리를 뺀 값으로 결정되는데, 은행들의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는 모두 다르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만기 10년 이상) 평균 가산금리와 가감조정금리(우대금리)는 KB국민은행이 2.64%와 1.18%, 신한은행이 3.19%와 1.73%, 우리은행이 2.92%와 2.01%, 하나은행이 2.97%와  2.51%, NH농협은행은 0.82%와 0.42%를 각각 적용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작은 금리 차에 따라 고객이 이동하는 등 실제 은행 간 경쟁은 치열하다”라며 “해당 은행의 영업 비밀인 금리 산정체계를 공유해가며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라고 말했다.

관가에서도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은행권의 주장을 차치하고서라도 담합 혐의는 입증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그래서 공정위는 통상 담합 조사의 경우 최소 수개월 이상 자료를 확보해 증거를 다져놓거나, 확실한 제보를 받지 않는 이상 섣불리 현장 조사를 나가지 않는다. 답합에 '리니언시' 제도를 적용하는 것도 그만큼 담합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리니언시는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그 사실을 자진 신고해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고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면 시정 조치나 과징금 등 제재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회의에서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관련 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회의에서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관련 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그런 면에서 이번과 같은 발 빠른 담합 관련 현장 조사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금융권을 겨냥한 윤석열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을 의식한 공정위의 ‘보여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대한 경쟁 촉진 방향을 마련하고 있는데 굳이 공정위가 나서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공정위 조사는 현행 금리 체계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 지난 2012년에 이뤄진 공정위의 조사 여파로 CD금리는 시장 지표금리 지위에서 사실상 퇴출당했고 코픽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금융당국은 “금리 산정 체계 관련 최근 공정위의 은행권 현장 조사를 통해 지적되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즉시 개선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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