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 승소 뒤엔…재판장이 불붙인 '헌법 배틀' 있었다 [法O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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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동성 배우자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원고 소성욱(왼쪽)씨와 배우자 김용민씨가 지난달 2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동성 배우자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원고 소성욱(왼쪽)씨와 배우자 김용민씨가 지난달 2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법원이 동성 배우자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法ON]에서는 이 재판 마지막 변론기일이 열린 1월 10일 법정으로 시계를 돌려보려고 합니다. 이날 벌어진 ‘헌법 토론배틀’이 판결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거든요.

이 사건은 11년 차 동성 커플이자 5년 차 부부인 소성욱·김용민씨 이야기입니다. 건강 문제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소씨가 직장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죠. 소씨는 공단이 지역가입자 자격을 전제로 부과한 보험료를 취소해달라면서 소송을 냈고요.

1심에서 올라온 ‘원고 패소’ 판결문을 받아든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는 양측 대리인에게 “항소심에서는 ‘평등의 원칙’에 집중하자”고 정리했습니다. 소씨는 “이성 사실혼 배우자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느냐”고 하고, 공단은 “우리나라 가족법 체계상 동성 결합이 인정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결국 핵심은 ‘평등의 원칙’이라는 거죠.

평등이라는 방대한 주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따져보는 걸까요. 헌법재판소는 이 물음표를 해석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엄격한 심사’와 ‘완화된 심사’인데요. 엄격한 심사는 평등권을 제한하는 목적이 정당한지, 방법은 적절한지, 피해는 최소화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는 방식입니다. 특히 헌법에 평등권을 명시해둔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엄격하게 들여다봅니다.

반면 완화된 심사는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만 있다면 평등원칙을 어기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다만 본질적으로 같은 걸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하거나, 본질적으로 다른 걸 자의적으로 같게 취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자의적’이라는 것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결여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2010년 헌법재판소가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도 완화된 심사를 거친 결과였습니다. 당시 헌재는 해당 조항이 헌법상 양성평등의 원칙을 침해하는 차별까지는 아니라고 보고 완화된 심사 기준을 댔고요. 신체적 능력 차이 등을 고려해 남성만 병역대상자로 둔 건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니 자의적인 차별로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소씨 측은 “엄격한 심사를 해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공단 처분의 목적이나 방법 등을 엄격하게 요모조모 따져달라는 거죠.

재판장/ 엄격한 심사를 하는 경우는 예외적인 건 알지요?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는 경우나, 차별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에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경우에 한정되어 적용이 되는데,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이 엄격한 심사의 대상인지는 의문스러운데요.

원고 대리인/ 소씨가 배우자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공단 처분을 받았으니 엄격한 심사가 가능합니다. 성별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불변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미국에서도 엄격하게 평등권 판단을 한 법리가 있습니다.

헌법 11조 1항에서 성별과 종교,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으니, 엄격한 심사 대상이라는 취지입니다. 대리인단은 ‘사회적 신분’이 성 소수자를 가리킨다고도 해석했습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완화된 심사 기준'에 대한 주장도 보완해보라는 숙제를 양측에 던졌습니다. 공단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서 평등권을 어긴 게 없는지, 또 이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기준을 설정한 건 없는지 따져보자는 겁니다.

재판장/ 이 사건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따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됐는지 판단하는 것이 쟁점입니다. 비교 기준을 뭘 삼느냐에 따라 본질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죠. 피고 대리인이 생각하는 이성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배우자 간 비교 기준은 뭡니까?

피고 대리인/ 기본적으로 가족법 체계상 배우자 범위에 동성 배우자가 포함되어야 하는데…

재판장/ 쟁점 이해를 잘 못 하고 있는데… 원고 대리인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비교 기준이 뭔가요?

원고 대리인/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에 국한해서 생각하면, 이성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배우자는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이 제도는 본인의 근로나 재산에 의해 보험료를 부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공단 측은 “이성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배우자가 본질적으로 다르니 다르게 취급했다”는 주장을 민법상 가족법 체계 안에서만 펼쳤습니다. 반면 소씨 측은 가족법 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생활동반자’들에게도 피부양자 자격을 주고 있는 건강보험 제도의 사회보장적 특성을 파고들었죠. 사실혼 배우자나 비동거 배우자 등에게도 혜택을 넓히면서 제도가 발전해왔으니, “공단이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는 취지입니다.

엄격한 심사와 완화된 심사, 둘 중에 어떤 기준을 택하는 게 소씨에게 유리할까요? 또 각 기준에 따르면 법원은 누구 손을 들어줘야 할까요?

판결문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재판부는 완화된 심사 기준으로 이 문제를 살펴봤고, 소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엄격한 심사를 할 만큼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겁니다. 원고 측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은 헌법 제11조 1항이 말하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성별로 인해 벌어지는 차별”이라는 주장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또 공단의 차별 대우로 인해 소씨와 같은 동성 배우자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제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대신 완화된 심사를 통해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인정했는데, 공단의 입증이 부족했던 탓이 컸습니다. 재판부는 “피고는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주장과 입증을 하지 않고 있다”고 판결문에 썼습니다. 증명 책임이 있는 행정청이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는 이상, 평등 원칙에 위반되는 자의적인 차별이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피고의 입증 부족으로 인한 원고 승소’라는 다소 싱거운 결론을 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어떤 차별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하는 토론 주제를 우리 사회에 한 번 더 던진 겁니다. 판결문의 마지막 두 문단을 다시 옮깁니다.

추가로 어떠한 차별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간략하게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차별이 존재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 감정, 지능, 능력, 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남아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
(중략)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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