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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겹칠 땐 출석 꿔주기도…'월화수목금' 법정 서는 유동규 [法ON]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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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주 4-5회 공판 출석하고 있고 어제도 다른 사건 증인신문을 장시간 진행해서 체력적으로 힘듦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제 전씨(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수면을 하나도 못하고 오늘 정신적 고통과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10일 중앙지법 523호에서 형사22부(부장 이준철)가 심리하는 대장동 핵심 5인방의 사건에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변호인이 한 말입니다. 유 전 본부장은 일주일 내내 법원에 나왔습니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이 5인방 사건,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형사23부(부장 조병구)가 심리하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요일에는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위례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의 피고인이거든요.

게다가 금요일에는 ‘피고인 유동규’의 이름이 걸리는 법정이 한 곳 더 있습니다. 311호에서는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금요일마다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시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헤르미온느의 시계가 이럴 때 필요한 걸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재판부의 재판장들끼리 모여 “유동규 피고인의 출석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협의를 했다고 합니다. 김용 전 부원장과 정진상 전 실장의 사건에서는 유 전 본부장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으니, 기일이 겹칠 땐 출석이 꼭 필요한 사건에다 유 전 본부장을 ‘양보’해주는 쪽으로요. 이럴 땐 유 전 본부장을 '변론분리'해 재판을 진행하게 됩니다.

비싼 몸이 된 유 전 본부장, 최근 더욱 주목 받는 것은 그의 입입니다. 재판 초기 말을 최대한 아끼던 그가 이제는 법원을 드나드는 길에 기자들에게 심경을 자세히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10일에는 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모씨가 숨진 채 발견된 데에 대해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공무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크게 다치는 것이 두려워 수사기관에서 감추다 보니 솔직히 말할 타이밍을 놓쳐 재판에 넘겨지고, 나중에야 심경 변화를 일으켜 고백하면 진술 번복을 지적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유동규 전 본부장이 10일 법정에 출석하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유동규 전 본부장이 10일 법정에 출석하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유 전 본부장 본인이 처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유 전 본부장 역시 솔직히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가 뒤늦게 태도를 바꾼 상태입니다.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건 지난해 10월입니다. 검찰에서 “김용 전 부원장에게 정치자금을 건넸다”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을 먼저 실토한 것입니다.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술술 써내려간 진술서는 또 다른 사건의 출발점이 됐죠.

그의 ‘변심’은 지금까지도 확고합니다. 생각을 고쳐먹은 그가 처음으로 법정 증인석에 앉은 건 9일 김용 전 부원장 사건이었는데요. “저희 목표는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였다”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했다” 등의 폭탄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러자 그의 증언을 가만히 듣던 재판부, 이렇게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신빙성 판단에 있어서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요. 대법원은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이 다를 때,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허위·과장·왜곡된 진술을 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보고 있기도 하고요.

법조계에서는 “이 상황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왜 진술을 바꾼 건지 계기가 충분히 설득돼야 한다”고 봅니다. 유 전 본부장이 설명하는 ‘변심’의 계기는 이른바 ‘가짜 변호사 사건’입니다. 유 전 본부장이 구속수사를 받던 도중 ‘이재명 캠프에서 나온 변호사’라고 접근한 사람들이 정보를 캐가는 것에 급급했다는 겁니다.

재판장은 이런 답변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느냐”고 캐물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서러움을 쏟아냈습니다. “그 변호사들은 평소에 접견도 오지 않다가 (정보가 필요할 때) 왔다”, “(이재명 대표 관련 뉴스가 나오면) ‘아, 변호사가 오겠구나’ 하고 예측될 정도였다”는 거죠.

이어진 검찰 신문에서도 당시 유 전 본부장의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재명 대표나 정진상 전 실장 등이 저를 조금이라도 신경 썼다면 저는 검찰에다 말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막상 그분들은 막강한 변호사들을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으로 지난해 9월 26일,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세 번째 조사를 받던 날을 꼽았는데요. “숨기는 데 한계가 왔었다”면서 “두 번째 조사 이후 독방 천장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기서 한 번 더 거짓말을 하면 끝장날 상황인 유 전 본부장이 최근 유튜브 출연을 결심한 것 역시 하나의 전략”이라며 “벼랑 끝에 몰린 그가 이제는 작심하고 진실만 말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주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말’로만 설득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결국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을 보강할 만한 추가 증거들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검찰이 이날 유 전 본부장에게 “김용 전 부원장에게 전달한 현금을 띠지로 묶었느냐 고무줄로 묶었느냐”, “이 돈을 정민용 변호사가 어떤 자세로 들고 나갔느냐”, “정 변호사는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느냐” 등의 디테일한 질문을 던진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풀이됩니다.

유 전 본부장이 자신의 ‘변심’의 진정성을 인정받아야하는 재판부는 아직 더 남았습니다. ‘월화수목금 피고인’의 삶을 사는 그는 31일 열리는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도, 또 월요일과 금요일에 열리는 대장동 5인방 재판에서도 조만간 증인석에 앉아야할 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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