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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별로 없는데 매진 행렬인 합스부르크 600년 전, 그 비결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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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19면

‘합스부르크 600년’ 전 연장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에서 벨라스케스의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오른쪽)를 포함한 스페인 왕실 초상화를 보는 관람객들. 문소영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에서 벨라스케스의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오른쪽)를 포함한 스페인 왕실 초상화를 보는 관람객들. 문소영 기자

“치열한 온라인 예매를 뚫고 겨우 예매 성공해서 갔어요.”

“피켓팅(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이던데 뚫으셨네요. 저 현장 판매 (티켓 구입) 2번 실패했어요.”

최근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화다. 아이돌 콘서트가 아니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이야기다.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 96점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지난해 10월 25일 시작했고 원래 이 달 1일 끝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시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면서, 양국 박물관은 전시를 3월 15일까지 2주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중앙박물관은 이번 주말에 누적 관람객 3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연장된 기간의 온라인 예매 티켓도 이미 매진 상태다.

미술애호가들 “인기 의외” 반응

‘합스부르크 600년’전에 나온 ‘세로 홈 장식 갑옷’(1525-30년경).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전에 나온 ‘세로 홈 장식 갑옷’(1525-30년경).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의외”라는 반응도 나온다.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외에는 빈미술사박물관의 대표작이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6-17세기 유럽 걸작 회화를 다수 소장한 이곳은 특히 ‘바벨탑’ 등 브뤼헐의 그림들, 티치아노의 대작들, 렘브란트의 자화상 연작 등으로 유명하지만 한국 전시에서는 이들을 볼 수 없다. 게다가 공주 초상화는 2007년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빈미술사박물관전’에 이미 온 적이 있다. 지난 20여 년간 해외여행 활성화와 여러 블록버스터 전시로 국내 관람객들의 해외미술관 소장품전 기대치는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그런데도 이번 전시가 매진 행렬을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1995)으로 미술관 여행 붐을 처음 일으켰던 이주헌 작가는 이렇게 평했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별로 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그 대신 합스부르크 왕가와 왕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유럽사를 갑옷 같은 유물과 초상화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한 전시다. 막시밀리안 1세, 루돌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와 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전시를 명료하게 구성해서 복잡한 역사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 전시라기보다 역사 전시에 가깝다고 본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5세기부터 선출직인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연달아 배출하고 활발한 결혼 동맹을 통해 오스트리아 왕가와 스페인 왕가를 형성해 수백 년간 유럽의 상당한 영역을 지배했다. 이 가문의 군주들 중에는 예술 후원과 수집에 열광적인 이들이 많았다. 빈미술사박물관은 그들의 컬렉션으로 19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이번 한국 전시의 각 섹션은 주요 왕족 컬렉터를 주인공으로 꾸몄으며 그림·유물에 얽힌 당대 사회상과 유행에 대한 설명을 글과 동영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복잡한 합스부르크 가문을 최대한 간결명료하게 정리한 가계도도 있다. 관람객들은 이것들을 상당히 꼼꼼히 보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공부 많이 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이런 뿌듯함을 주는 교육 기능이 중요하다. 그래서 도입부의 갑옷 전시 공간에도 갑옷 디테일과 착용을 쉽게 보여주는 영상을 배치했다.” 전시를 기획한 양승미 학예연구사가 설명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역사 전시로만 가게 되는 것도 경계했다. 예술 전시와 역사 전시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의 컬렉터로서의, 예술 후원자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두고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빈미술사박물관 사비나 하그 관장이 직접 보고 굉장히 새로운 관점에서 전시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번 전시의 성격을 압축하는 하이라이트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의 거대 천장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자체 제작한 영상이다. 19세기에 제작된 이 천장화에는 역대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와 대공, 그들이 후원한 예술거장들이 일곱 개의 그룹으로 그려져 있다. “한마디로 누가 있었기에 지금의 빈미술사박물관이 가능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천장화이다. 저 천장화를 보는 순간 꼭 전시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장화를 떼어올 수 없으니 영상으로 만들었다.” 양 연구사는 설명했다.

유럽 수백년 지배한 합스부르크 가문

요제프 호라체크 작 ‘엘리자베트 황후’(1858).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요제프 호라체크 작 ‘엘리자베트 황후’(1858).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대중문화의 영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30대 여성 관람객은 이렇게 말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팬인데 시씨(엘리자베트 황후의 애칭)의 초상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예매 실패 끝에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현장 예매에 성공해 들어왔다. 그 밖에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그녀가 총애한 여성 화가 비제 르브룅이 그린 것을 직접 보아서 좋았다. 근친혼 때문에 모두 주걱턱이 된 스페인 왕가 얘기도 유튜브에서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 초상화들을 직접 보니 재미있었다. 유럽 왕실의 뒷얘기들을 좋아해서 이 전시에 왔는데 추가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 많아 매우 만족한다.”

이주헌 작가는 또 다른 성공요인으로 전시 디자인을 지적했다. “전시장의 조명, 벽 색깔, 공간 배치, 관람객 의자의 디자인 등이 유럽의 오래된 미술관 박물관 스타일을 충실히 따랐다. 그간 팬데믹으로 여행을 못 갔던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을 온 느낌을 주고 특히 팬데믹 이전에 유럽 뮤지엄을 돌아봤던 사람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적 분위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끌리지 않았나 싶다.” 전시디자인은 이현숙 디자인전문경력관이 맡았다.

이렇듯 ‘합스부르크 600년’전의 대성공은 사람과 역사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뮤지엄에서 작품 감상뿐 아니라 공부를 하고 공간적 즐거움을 얻기를 바라는 요즘 관람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팬데믹 직후라는 시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앞으로 전시에서 큐레이팅과 공간 디자인은 더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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