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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낮잠, 민생 고달프다…K칩스법 등 경제민생법 70% 제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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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첫째)과 최상대 기재부 2차관(둘째)이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첫째)과 최상대 기재부 2차관(둘째)이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낮잠 자는 동안 민생이 고달파지고 있다.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1대 국회(2020년~2024년)에서 발의한 법안 1만9750건 중 1만3972건이 미처리(계류) 상태로 나타났다. 국회의원과 정부 등이 낸 법안 10건 중 7건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 미처리 발의안은 2021년 말 대비 1.5배 수준으로 늘었다.

여야 정쟁으로 국회에서 멈춘 대표 법안이 ‘경제 3법(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공급망기본법·국가재정법)’이다.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8%에서 15%(대기업 기준)로 높이는 내용의 일명 ‘K칩스법’(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2월 국회통과가 물 건너갔다.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산업의 위기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재벌 특혜법이라고 비판하고 있어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산업계에서는 K-칩스법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대만이 설비 투자 세액공제율을 25%까지 높이는 등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이 경쟁국보다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가 올 1~2월 3조원가량의 영업적자(추정)를 기록하는 등 반도체 위기는 커지고 있다.

‘요소수 부족 사태’ 등을 계기로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발의한 공급망기본법 제정안도 마찬가지다. 해외 경쟁국에선 희토류 등 핵심 자원을 둘러싸고 자국의 공급망 강화를 위해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시급히 다뤄야 할 문제지만 역시 국회 계류 중이다.

경제 3법 중 하나를 맡은 기재부 A 과장은 여야 의원을 설득하느라 연초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주해왔다. A 과장은 "법 통과 여론이 높아 국회 문턱을 수월하게 넘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재명 의원 체포동의안 같은 정쟁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처음 발의할 땐 법안 취지에 동의해놓고선 ‘굳이 지금 처리해야 하느냐’고 미뤄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되 국가채무비율의 60%를 초과할 경우 적자 한도를 GDP의 2%로 축소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지난해 9월 발의)도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재정 준칙부터 정하고 그 안에서 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전제로 난방비나 공공요금 등 취약계층을 지원해야 하는데 (재정 준칙 논의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재정 확대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소야대’ 상황인 데다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과반 의원을 확보해도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기 어려운 구조”라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 ‘협상파’가 설 공간이 줄어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야 가릴 것 없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선명성’ 경쟁으로 들어갈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위해 내놓은 다수의 부동산 관련 법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정부가 지난해 연말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중과를 폐지하고 취득세를 완화하는 내용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자 김모(65)씨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1월 최고가보다 집값이 3억 이상 빠진 서울 송파구의 전용면적 59㎡ 규모 아파트를 계약했다. 하지만 3월 잔금 납부를 앞두고 걱정이 많다. 국회에서 아직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아서다. 김씨는 “정부 발표만 믿고 취득세가 500만원 이하일 것으로 보고 계약했는데, 1000만원 이상 내게 생겼다”며 “법이 통과될지도 불확실하지만, 통과되더라도 세금 인하 폭이 줄어들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의정 활동을 활성화하는 취지에서 2021년 3월부터 시행한 ‘일하는 국회법’은 무용지물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매달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는 2회 이상, 법안소위는 3회 이상 개최해야 한다. 하지만 ‘일하는 국회법’을 시행한 뒤 올해 1월까지 월 3회 이상 법안소위 개최를 준수한 상임위는 한 곳도 없었다.(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 지난해 17개 상임위원회에선 법안 소위를 122회(월평균 0.6회) 개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통으로 꼽히는 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야가 모두 ‘민생 법안’을 내걸었지만, 내용과 방향이 전혀 달라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며 “먹고사는 문제를 뒤로 미루지 않겠다는 데 공감한다면, 정쟁하더라도 공통분모가 있는 부분부터 풀어나가는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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