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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심심찮은 사과 말고 심심한 사과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한 기업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과문으로 인해 온라인상에서 문해력 저하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글에 “하나도 안 심심하고 재미있다” “심심하다고 해서 더 기분이 나쁘다”는 등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일부 네티즌이 ‘심심하다’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사과문에서의 ‘심심(甚深)하다’는 지루하다는 의미의 ‘심심하다’와 소리만 같을 뿐 의미가 다른 동음이의어다. ‘심할 심(甚)’ 자와 ‘깊을 심(深)’ 자가 사용돼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심심한 사과’는 깊고 간절한 사과를 뜻하는 표현이다.

동음이의어로 ‘심심하다’는 말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데다 ‘심심(甚深)하다’는 일상적 대화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 문어체적 표현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선 간혹 “심심찮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와 같은 표현도 등장한다.

‘심심찮다’는 ‘심심하지 않다’가 줄어든 낱말로, 드물지 않고 꽤 잦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심심찮은 사과’는 드물지 않고 잦은 사과라는 뜻이 돼 버린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심심한 사과를 올린다” 등과 같이 써야 바르다.

‘심심(甚深)하다’는 사과문에만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등과 같이 다양한 상황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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