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죽이는 연기자" 전도연표 '킬 빌' 길복순, 지천명 액션 베를린서 통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음달 넷플릭스 공개 예정 영화 '길복순'. '불한당'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고 전도연이 액션 주역에 나서, 지난 18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다. 사진 넷플릭스

다음달 넷플릭스 공개 예정 영화 '길복순'. '불한당'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고 전도연이 액션 주역에 나서, 지난 18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다. 사진 넷플릭스

배우 전도연(50)의 ‘지천명 액션’에 베를린이 환호했다. 전도연이 10대 딸을 둔 ‘싱글맘’인 킬러로 분한 영화 ‘길복순’이 지난 18일(현지 시간)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호평 속에 베일을 벗었다.

전도연 싱글맘 킬러 액션 ‘길복순’ #25일 폐막 베를린영화제서 호평 #내달 31일 넷플릭스 190개국 출시 #전도연 “‘밀양’ 후 진지한 작품… #길복순 통해 또 한번 틀 깼죠”

다음 달 31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190여개국에 공개되는 ‘길복순’은 언더커버 액션 수사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부정 선거의 시초를 캔 ‘킹메이커’(2022) 등 남성들의 맞대결을 감각적으로 담아온 변성현 감독이 각본을 겸한 작품. 전도연이 맹인 검객으로 나온 무협 사극 ‘협녀: 칼의 기억’ 이후 8년만의 액션에 도전했다. 수상 경쟁에선 제외된 비경쟁 부문 베를리날레스페셜 초청작인데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2007)의 전도연, K콘텐트 맛집 넷플릭스가 만난 킬러 액션이란 점만으로 주요 외신에 주목받았다.

중년 미혼모판 '존 윅', 전도연표 '킬 빌'  

업계 최고 킬러가 조직의 제거 대상으로 지목되며 목숨을 위협받는 추격전은 액션 스릴러에서 새롭진 않은 소재. 그럼에도 전도연의 중년 미혼모 킬러 캐릭터로 차별화했다는 호평이 나온다. 방영 중인 드라마 ‘일타스캔들’(tvN)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사교육 1번지에 갓 뛰어든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 출신 반찬가게 사장 캐릭터에 ‘스카이캐슬’(JTBC)의 치맛바람 입시교육, 할리우드의 잔혹하고도 코믹한 범죄 액션 장르가 한데 만난 듯하다.
외신에선 특히 전문 킬러들의 지리멸렬한 살육전을 만화 같은 액션으로 다룬 키애누 리브스 주연 범죄 느와르 ‘존 윅’, 우마 서먼 주연의 복수 액션 ‘킬 빌’ 등에 빗댄 리뷰가 많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존 윅이 10대 딸의 레즈비언 커밍아웃을 맞닥뜨린 중년 미혼모라면 이럴 것”이라고, 영국의 스크린데일리는 “펀치 날리는 법을 확실히 아는 영화”라고 칭찬했다.

'야쿠자' 살해보다 더 어려운 사춘기 딸 커밍아웃 

다음달 넷플릭스 공개 예정 영화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사진 넷플릭스

다음달 넷플릭스 공개 예정 영화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사진 넷플릭스

길복순은 두 얼굴의 킬러다. 한밤중 교각에서 야쿠자와 진검승부를 벌이다가도, 마트 폐점 시간에 맞춰 황급히 퇴근한다. 청부살인업계 최고 회사 ‘MK엔터’의 에이스 킬러지만, 집에선 엄마 정체를 모른 채 명문사립학교에 다니는 딸 길재영(김시아)의 입시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은퇴를 고민하는 그에겐, 10대 때 그를 청부살인업계로 이끈 MK엔터 대표 차민규(설경구)의 만류, 오빠에게 총애받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차민규의 동생 차민희(이솜)의 질투, 후배 킬러이자 내연남 한희성(구교환)과 목숨 걸린 문제들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바로 딸이다. 혼자 힘으로 모자람 없이 키우려 애쓴 재영(김시아)이 사춘기를 맞아 동성애에 눈 뜬 것.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아버지에게 학대 받고 자라 킬러가 된 복순이 자기 자신의 삶을 딸에게 솔직하게 드러내고 스스로를 껴안아가는 과정과 겹쳐진다.

美매체 "타란티노풍 그 이상의 캐릭터 만들었다" 

'길복순'에서 청부 살해 킬러들의 소속사인 MK엔터 차민규 대표(설경구, 위)와 동생인 이사 차민희(이솜). 남매는 길복순의 존폐를 두고 갈등한다. 사진 넷플릭스

'길복순'에서 청부 살해 킬러들의 소속사인 MK엔터 차민규 대표(설경구, 위)와 동생인 이사 차민희(이솜). 남매는 길복순의 존폐를 두고 갈등한다. 사진 넷플릭스

액션 스타일도 ‘존 윅’ ‘킬 빌’이 떠오른다. 일상적인 도구가 순식간에 살인 무기로 변하고,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낸 핏방울이 슬로모션으로 공중부양하는 살육전, 길복순이 대결 상황마다 상대를 무찌를 무수한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장면들이 다각도 촬영으로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길복순이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던 단골 선술집에서 한때 우정을 나눴던 킬러들과 젓가락, 프라이팬, 맥주병으로 유혈 낭자한 결전을 벌이는 액션 장면은 백미.
미국 매체 ‘데드라인’은 “변성현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를 연상시키는 일상 코미디 요소를 활용하지만, ‘타란티노풍’ 그 이상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전도연 모녀 관계 지켜보며 시나리오 작업

지난 18일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독일 베를린에서 초청 영화 '길복순' 주연 배우 전도연(오른쪽부터)과 변성현 감독, 배우 김시아가 현지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넷플릭스

지난 18일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독일 베를린에서 초청 영화 '길복순' 주연 배우 전도연(오른쪽부터)과 변성현 감독, 배우 김시아가 현지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넷플릭스

‘길복순’은 전도연으로부터 모든 아이디어가 시작된 영화다. 변 감독은 전작 ‘불한당’에서도 당시 쉰에 접어든 연기파 배우 설경구를 동성애 멜로 감정을 가미한 색다른 스타일의 연기로 ‘지천명 아이돌’ 팬덤을 선사한 바 있다.
 ‘길복순’은 전도연을 위한 작품을 꿈꾼 변 감독이 정해둔 내용 없이 전도연에게 차기작을 약속받으며 구상에 돌입했다. 전도연의 대외 활동뿐 아니라 집에서 딸과 지내는 일상 모습을 지켜보고 이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 만큼 전도연의 오랜 배우로서의 삶을 킬러 세계에 빗댄 작품이란 풀이도 나온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는 “청부살인을 ‘작품’이라 표현하고 킬러들은 일종의 소속사와 계약 관계를 맺는 존재로 묘사된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사이에서 품위와 실력을 지켜야 하는 길복순의 고뇌는 실제 전도연과 닮았다”면서 “배우의 훌륭한 작업을 ‘죽이는 연기’라 표현하는 것도 길복순을 전도연 그 자체로 해석해보게 만든다”고 했다.

전도연 "'밀양' 이후 어둡고 진지…길복순이 틀 깨"

길복순 2차 예고편 캡처. 엄마 길복순의 직업을 다른 것으로 오해하는 딸 재영(김시아)은 엄마의 회사 동료로 알고 있는 차 대표(설경구)에게 엄마가 회사에서 어떤지 묻는다. 사진 넷플릭스

길복순 2차 예고편 캡처. 엄마 길복순의 직업을 다른 것으로 오해하는 딸 재영(김시아)은 엄마의 회사 동료로 알고 있는 차 대표(설경구)에게 엄마가 회사에서 어떤지 묻는다. 사진 넷플릭스

‘길복순’은 전도연에게도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데뷔 이후 PC통신 시대의 사랑을 그린 스크린 데뷔작 ‘접속’(1997)부터 정통 멜로 ‘약속’(1998), 모녀의 젊은 날을 모두 연기한 ‘인어공주’(2004), 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범죄 액션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간 그다.
‘밀양’으로 한국 최초 칸 국제영화제 연기상을 받으며 ‘칸의 여왕’이 된 이후론 칸에 초청된 ‘하녀’(2010) ‘무뢰한’(2015) 등 진지한 작품이 주를 이뤘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전도연은 “‘밀양’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후 오히려 어떤 틀에 갇혀있었다. 더 어둡고 깊고 진지한 작업이 계속해서 나를 찾았다. 그 틀을 넘어설 작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면서 “길복순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해준 역할”이라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