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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고독과 절대 궁핍, 빛처럼 비추어주소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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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09면

선생님! 선생님께서 작년 2월 26일에 하늘나라로 떠나신 후에 1년이 흘러갔어요.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흘러갔어요. 그렇게 부재로 존재하는 선생님의 시간은 자연 속에서 흘러갔어요. 그런데 선생님, 또 한 편으로 선생님의 시간은 인간의 가슴 속에서, 독자의 가슴 속에서,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었어요. 죽음이 아니라 태어남인 것입니다. 고 김윤식 교수님이 하셨던, “이어령씨 앞에 서면 비행기 프로펠러 앞에 서는 것과 흡사하다. 맹렬하고 역동적이고 지속적이어서 숨을 쉴 수가 없다”라는 말이 생각나요. 그렇게 사후에도 새로운 신간들이 줄을 지어 독자의 가슴속으로 파도의 울림을 안고 밀려들었어요. 그런 언어의 힘을 문학의 불멸이라고 하는가 봐요. “나는 가도 생명의 밈(meme)은 사방에 퍼져 있을 것입니다. 문자를 가진 자의 행복이지요”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

“애도는 이름 안에 존재한다”고 데리다가 말했어요. 애도의 이름은 고유한 고유명사이고 그는 현존과 부재의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많은 사람들은 그 이름 안에서 그리워하고 있지요. 가끔 회고의 시간이 올라옵니다. 호영송 작가는 ‘이어령은 창조의 아이콘’이고 태양이 매일 새로 떠오르는 것처럼 이어령에게는 ‘생각은 매일 새로 떠오른다’라고 말했어요. 제 친구 강석경 작가는 “이어령은 거대한 바다이고 지성의 거대함이 있는데 상반적으로 소년 같은 감성이 있어서 그것이 예술가의 감성이 되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의 사랑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어요. 강 작가는 또 “소년 같은 감성을 말하니 선생님이 편지 받는 거 좋아하신 것도 생각나요. 장관 시절 제가 미국 여행을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갔더니 편지를 쓰라고 했어요. 제가 선생님이 제자의 편지 받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할 말도 없는데 의무로 썼는데 뒤에 보니 내용도 없어서 죄송했어요”라고 웃었어요. 결국 굴렁쇠 소년의 경이로움이 가슴을 쳤어요.

선생님, 저는 이상하게도 요즈음 희망이나 꿈이나 자유 같은 단어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시대적 상실인지 근원적 상실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무언가가 저를 옥죄고 있어요. 이 가난한 절대 궁핍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이 반지성주의적 공포를, 챗GPT의 매혹과 무서움에 대해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죽음을 사랑으로 봉합하는 오르페우스의 피리는 어디에 있나요? 선생님, 롤랑 바르트는 끝없이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것, 그 안에서 타자를 위한 작은 쪽지의 기념비를 만드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애도라고 말했어요. 스승을 위해 하얀 나비처럼 펄럭이는 작은 애도의 쪽지를 바칩니다. 이 시대의 고독과 절대 궁핍을 빛처럼 환하게 비추어주소서. 희망과 꿈과 자유와 같은 새로운 단어들을 나누어 주소서. 항상 고마운 선생님, 주님의 은혜 안에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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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김승희

김승희 시인. 서강대 국문과 명예교수.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 산문집 『33세의 팡세』, 연구서 『애도와 우울(증)의 현대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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