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인가 독인가, 이야기의 두 얼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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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21면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유토피아로 한 걸음 내디디는 방법은 이것이다. 시인을 추방하라. 최후의 1인까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저서

『국가』에 쓴 글이다. 여기서 플라톤이 말하는 ‘시인’은 ‘허구를 짓는 사람’으로 해석된다. 철인왕이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갈망한 초합리주의자 플라톤은 시인, 즉 이야기꾼을 일컬어 정치체(政治體)를 감정에 도취시키는 직업적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자기 스스로도 엄청난 이야기꾼이었던 플라톤이 도대체 왜 인류의 가장 큰 본능적 특징인 스토리텔링과 스토리텔러를 정면으로 공격했을까.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The Story Paradox)』에는 바로 그 해답이 들어 있다.

지은이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은 인류의 생존에 산소만큼 필수적이면서도 그만큼 치명적인 독”이라며 플라톤처럼 서두부터 “결코 이야기꾼을 믿지 말라”고 외친다. 갓셜은 스토리텔링의 필수적이고 즐거운 측면을 유지하면서도, 독의 가장 나쁜 성분을 걸러 내는 전략을 고안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슬기로운 동물 ‘호모 사피엔스’인 것 못지않게 이야기에 중독된 동물 ‘호모 픽투스(Homo Fictus)’임을 잘 모른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매혹적인 이야기는 집단 결속을 강화할 수도, 한 집단이 독점하면 나머지를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1910년대 미국 학교의 이야기 수업 시간. [사진 New York Public Library]

매혹적인 이야기는 집단 결속을 강화할 수도, 한 집단이 독점하면 나머지를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1910년대 미국 학교의 이야기 수업 시간. [사진 New York Public Library]

인류는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서로를 설득해 이해를 증진해 왔다. 만능키인 스토리텔링을 매개로 공감을 강화해 집단을 결속하고 그렇게 문명을 건설했다. 이야기의 긍정적 측면이다. 반면에 스토리텔링은 인류 역사 대대로 인간 행동을 대규모로 통제하고 형성하는 주된 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혼돈, 폭력, 오해를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지은 철학자 칼 포프는 “플라톤시대부터 사람들이 꿈꾼 모든 전체주의 유토피아의 으뜸가는 통치법칙은 이야기를 통제하고 독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법칙은 나치 독일, 소련, 북한,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을 비롯한 20세기의 모든 무시무시한 전체주의 실험에 예외 없이 들어맞는다. 이 정권들은 모두 언론에서 예술에 이르는 모든 형태의 스토리텔링을 독점하려 들었다. 국가의 메시지 전달 요구를 따르지 않는 이야기꾼은 살해당하거나 굴라크(강제수용소)로 추방됐다. 이 정권들은 이야기 나라를 우선 지배하지 않고서는 현실 세계를 지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또 어떤가. 하나의 이념이나 문화적 관점만을 대표하고 다른 관점을 배제하는 ‘미디어 버블’, 가짜뉴스, 치명적 확증편향의 탈진실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야기가 꾸며 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현재의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의 현실 또한 비슷하다. 현실에 대한 합의가 무너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사실상 이야기 나라에서 살아가게 되며 미래는 사실보다는 라이벌 이야기꾼들의 전쟁에 의해 빚어질 것이다.

인류는 현재 창궐하는 전염병 대유행, 수십 년째 계속되는 전쟁, 포퓰리즘 운동을 이끄는 무자비한 선동가의 부상, 끓어오르는 민족적 계급적 긴장, 우리 문명에 대한 확신의 약화, 점점 뚜렷해지는 실존적 위협에 처해 있다. 여러 종류의 궤변 때문에 사람들이 같은 현실을 같은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탈진실 세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도 플라톤 시대와 비슷하다.

특히 SNS가 매 순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토리텔링의 위험성은 항상 노출돼 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이야기의 도덕적 단순화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필자는 강조한다. 호모 픽투스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그 위험성을 합리적으로 제거해 낼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선진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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