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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쓴 우크라이나 소녀의 난민 일기[BOOK]

중앙일보

입력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예바 스칼레츠카 지음
손원평 옮김
생각의힘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평범한 밤 쨍쨍 울리는 커다란 금속음에 잠을 깼다. 처음엔 폐차장에서 자동차를 부수는 소리인 줄 알았지만 그 소리가 폭격이라는 걸 깨닫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거대한 로켓이 집을 스치더니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심장이 얼어붙었다. 전쟁에 대해 들으며 자라 왔지만 전쟁을 겪은 적은 없었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아는 건 단 하나, 지하실로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었다. 숨을 쉴 수 없었고, 손은 차갑고 축축해졌다.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2022년 2월 24일, 그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던 열두 살 우크라이나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의 삶에 격변이 찾아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예바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볼링을 치고 풍선 장식에 기뻐하던 나날을 뒤로 한 채 생존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고 인근 피해 상황을 얘기하는 게 새로운 일상이 됐다. 과거에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일이 사소해진다.

난민 일기를 쓴 우크라이나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 사진 생각의힘

난민 일기를 쓴 우크라이나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 사진 생각의힘

예바는 살아남기 위해 고향 하르키우를 떠났다. 난민이 된 것이다. 집이 없는 난민이라는 사실이 창피했다. 하지만 난민이 된 건 예바만이 아니었다. 같은 학년 친구들도 대부분 안전한 곳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며 난민이 됐다. 집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미사일이 날아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르키우 주택의 절반이 포격으로 무너졌다. 결국 예바는 포격음이 일상이된 우크라이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우크라이나 우즈호로드, 헝가리를 거쳐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의 일기장. 사진 생각의힘

우크라이나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의 일기장. 사진 생각의힘

이 책은 그 여정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를 엮은 책이다. 눈물과 슬픔, 공포가 뒤엉킨 혼돈의 순간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 채 전쟁터에 나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상황,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끊이지 않는 매일을 담았다. 예바는 전쟁으로 고국을 떠난 1000만 명의 난민과, 집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수많은 어린이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책 말미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린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우린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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