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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키이우행 다음날…푸틴 "핵무기 통제 조약 참여 중단" 선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국정 연설에서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 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또 1년간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서방에 돌렸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에 대한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가 2010년 체결한 뉴스타트는 양국 핵탄두와 운반체를 일정 수 이하로 감축하고 쌍방 간 핵시설을 주기적으로 사찰하는 내용이 골자다. 조약은 한 차례 연장을 거쳐 2026년 2월까지 유효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추가 연장 협상은 답보 상태다. 푸틴 대통령은 또 "미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우리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치분석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러시아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은 매우 적대적인 신호"라면서 "서방과의 관계를 회복할 의사가 없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계속할 생각이란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은 미국이 러시아의 핵 관련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선언에 대해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유감을 표명하며 "러시아가 결정을 재고하고 기존 합의를 존중할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2월 24일)을 앞둔 이날 2년 만에 의회에서 국정 연설을 했다. CNN·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세를 체계적으로 계속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러시아의 정치·군사 엘리트들을 향해 "우리가 직면한 과제를 신중하고, 일관되게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을 시작한 것은 서방이고,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서방이 지역 분쟁을 글로벌 분쟁으로 확대하려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추가 군사 지원은 모스크바로부터 군사적 대응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정치·군사·경제적 의미에서 실제로 이 나라를 점령한 키이우 정권과 서방 주인들의 인질이 됐다"고도 말했다. 그는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은 전쟁을 지지한다고 역설하며 러시아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서방의 시도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로 인한 '경제 전쟁'에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서방이 전면적인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국가 안보와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의 이번 연설과 관련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아무도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미하일 포돌야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그의 연설에 대해 "부적절하고, 혼란스러움이 드러났다"고 평했다.

알자지라는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푸틴의 연설은 러시아 국민들과 엘리트들 달래기용"이라며 "전쟁 1년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푸틴은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의 연설 도중 디도스 공격으로 추정되는 이유로 러시아 국영TV 웹사이트가 먹통되기도 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에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날 이뤄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에 대해 "우리에게 특별하지 않았다. 러시아 내부 상황에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행사는 중요하다. 당연히 이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고 말했다.

전날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후 처음으로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푸틴은 틀렸다"며 "미국은 언제까지고 계속 우크라이나 곁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러시아의 의원들, 관료 등이 21일 푸틴 대통령의 국정 연설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의원들, 관료 등이 21일 푸틴 대통령의 국정 연설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러시아 동맹국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자원자들로 구성될 최대 15만 명 규모의 지역민방위군 창설을 지시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날 국가안보회의에서 "상황이 간단치 않다. 여러 차례 말했듯이 (남녀) 모두가 최소한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 그는 "침략 행위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대응은 신속하고 가혹하며 적절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지역민방위군 창설 지시는 벨라루스 이웃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침공 전쟁이 확대돼 벨라루스가 무력 분쟁에 휘말리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벨라루스가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전할 수 있다는 관측은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키이우 등지로 진격할 때 벨라루스를 전진 기지로 활용한 바 있다.

빅토르 흐레닌 벨라루스 국방장관은 "새로 창설될 지역민방위군에 10만~15만 명의 자원자들이 들어가게 되고, 필요하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며 "원칙적으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민방위군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벨라루스 국방부는 이날 "상당히 많은 우크라이나군이 양국 사이 국경 인근 지역에 집결해 있다"며 "국경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군사적 도발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이와 함께 벨라루스 국방부는 오는 9월 22~26일 러시아와의 합동 군사훈련을 러시아 현지에서 실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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