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데릭 지터랑 뛰어봤어?”…‘WBC 경력직’ 코치들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WBC 야구국가대표팀 정현욱 코치(왼쪽)와 배영수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WBC 야구국가대표팀 정현욱 코치(왼쪽)와 배영수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지난해 7월 야구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강철(57) 감독은 몇 달간 장고를 거듭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기나긴 여정을 함께할 코칭스태프 구성 때문이었다. 자칫 사단으로 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공정한 틀 안에서 후보군을 추렸다. 경험과 지도력을 최우선 조건으로 놓고 대표팀 코치들을 고르고 또 골랐다.

이렇게 탄생한 보좌진이 바로 ‘초호화’ 코칭스태프다.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에서 1군 사령탑을 지낸 김기태(54) 타격코치를 필두로 김민호(54) 3루·작전코치, 김민재(50) 1루·수비코치, 진갑용(49) 배터리코치, 정현욱(45) 투수코치, 배영수(42) 불펜코치, 심재학(51) 퀄리티컨트롤코치가 이 감독을 보좌하게 됐다. 모두 프로야구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왕년의 스타들’이다.

이들 가운데 역대 WBC에서 활약한 이들도 적지 않다. 김민재, 진갑용, 정현욱, 배영수 코치가 주인공이다. 먼저 유격수 출신의 김민재 코치는 2006년 초대 대회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도왔다. 착실한 수비로 대표팀 내야진을 책임졌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일화도 함께 남겼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 미국과의 2라운드 경기가 한창이던 순간. 당시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하던 데릭 지터(49)에게 몰래 다가가 소위 ‘팬심’을 밝혀 화제가 됐다.

대표팀과 KIA 타이거즈의 연습경기가 열린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만난 김 코치는 “사실이 조금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 내가 일방적으로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당시 경기에서 지터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았다. 그러자 지터가 다음 이닝 때 ‘그런 타구를 잡아내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웃으며 째려봤다. 그래서 나도 ‘미안하다’면서 ‘사실 나는 당신의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내용이 일종의 고백처럼 와전됐다”며 웃었다.

17년이 지났지만, 당시 기억은 생생한 눈치였다. 김 코치는 “지터와 함께 뛰어봤다는 점은 지금도 뿌듯하다. 평생의 자랑거리다”면서 “이번 대회에선 일본의 전력이 강하다고 하는데 당시 미국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미국을 이기지 않았나. 후배들도 반전의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WBC 야구국가대표팀 김민재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WBC 야구국가대표팀 김민재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공격형 포수였던 진갑용 코치에게도 WBC는 잊을 수 없는 무대다. 2006년과 2013년 대회를 뛴 진 코치는 “개인적으로는 2009년 대회를 나가지 못한 점이 한으로 남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햄스트링을 다쳐서 이듬해 고생을 했다”며 아쉬운 기억을 먼저 떠올렸다.

이어 “WBC는 야구인들에게 자부심이다. 축구의 월드컵처럼 나라를 대표해 뛸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선수들에게 이야기할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 때보다 지금 후배들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WBC 야구국가대표팀 진갑용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WBC 야구국가대표팀 진갑용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정현욱 코치와 배영수 코치도 WBC를 통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정 코치는 한국이 준우승을 차지한 2009년 대회에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5경기 동안 10과 3분의 1이닝을 던지면서 마당쇠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때 투혼으로 ‘국민 노예’라는 별명도 생겼다.

정 코치는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며 웃고는 “그때는 몸이 잘 만들어져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많은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다행히 결과도 좋아서 지금까지 흐뭇한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이번 대회는 선수들에게도 부담이 크다. 꼭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면서 “우리 마운드가 약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베테랑들은 물론 어린 선수들 모두 뛰어난 공을 던진다. 신구 조화가 잘 이뤄지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WBC 야구국가대표팀 정현욱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WBC 야구국가대표팀 정현욱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배 코치 역시 WBC를 통해 모두가 알 만한 별명을 얻었다. 바로 ‘배열사’다. 2006년 대회에서 스즈키 이치로(50)의 엉덩이를 빠른 직구로 맞힌 덕분이었다. 당시 이치로는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해 국내 야구팬들에게 단단히 찍힌 터였다. 이후 일본야구의 심장 도쿄돔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이치로에게 복수해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배 코치는 “이치로 이야기는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다”면서도 “2006년 WBC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지 않았나. 그래도 게임을 치르면서 놀라움은 사라지고 승부욕만 남았다”고 회상했다.

WBC 야구국가대표팀 배영수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WBC 야구국가대표팀 배영수 코치가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후배들의 부담감도 잘 아는 눈치였다. 배 코치는 “사실 경기가 시작되면 한국시리즈 7차전을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부담감이 클 텐데 이를 잘 극복하면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또, 이를 위해선 코치들의 몫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이 4강과 준우승을 차지한 2006년과 2009년 WBC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의 부진을 누구보다 아쉽게 느끼는 이유다. 어느덧 40~50대 지도자가 된 국가대표 출신 코치들은 “현재 분위기는 정말 좋다. 모처럼 WBC가 열리기도 하고, 한국야구의 부흥을 위해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서인지 모두가 하나로 뭉쳐있다. 후배들 모두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안고 뛰어줬으면 한다”고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