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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하얀석유' 틀어쥔다…"리튬 국유화, 미·중·러 손 못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10위 리튬 매장국 멕시코 정부가 리튬을 국유화한다고 공포했다.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쓰여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을 향한 각국 쟁탈전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나온 발표다.

리튬을 국유화하겠다고 밝힌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EPA=연합뉴스

리튬을 국유화하겠다고 밝힌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EPA=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전날 소노라주(州)를 찾아 리튬을 국유재산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멕시코에서도 광물이 가장 풍부한 소노라주에 리튬 매장지 6개 지역을 '채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의 탐사·채굴권을 국가에서 독점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아리베치·디비사데로·그라나도스 등의 지역으로 총 면적이 2348㎢에 달한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 나라, 이 지역에 있는 리튬은 멕시코 국민의 것"이라 밝히고 "미국, 중국, 러시아가 착취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멕시코 정부는 그간 중남미의 리튬 보유국들과 연합 결성을 추진하는 등 자원 국유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글로벌 시장은 멕시코의 리튬 국유화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스마트폰·노트북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 가격이 지난 3년간 10배 치솟으며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10위 '리튬 부국'의 움직임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멕시코의 리튬 매장량을 약 170만t으로 추정하고 있다.국제에너지기구는 2040년까지 리튬 수요가 현재보다 40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어 앞으로 몸값은 더욱 오를 전망이다.

아르헨티나의 리튬 매장지. 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리튬 매장지. AFP=연합뉴스

그러나 정부의 국유화 선언에도 멕시코의 리튬 탐사·개발은 험로가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의 간펑리튬 등 12개 외국 회사가 이미 채굴권을 가지고 있어서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들 회사의 채굴권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멕시코 정부는 이들과 파트너십을 맺되, 정부 측이 합작투자회사 지분 대부분을 갖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들 것이란 게 외신의 전망이다.

멕시코에 매장된 리튬은 매우 분산돼 묻혀 있고, 밀도가 낮아 채산성이 떨어진단 점도 문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멕시코와 같은 점토질 토양에서 리튬이 채굴된 사례가 없어, 주요 리튬 생산국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한다. 중남미 경제를 다루는 매체 비엔아메리카스는 "개발에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고위험 산업이라 외국 회사의 기술력·자본 없이 개발이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중남미 국유화 심화

리튬 개발·생산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나선 건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글로벌 시장은 전 세계 리튬의 53%가 매장돼 있어 '리튬 삼각지대'로 불리는 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아 3개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테슬라 전기차 충전소. EPA=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테슬라 전기차 충전소. EPA=연합뉴스

리튬을 헌법상 '전략 자원'으로 명시한 칠레는 오는 3월 국영 리튬 기업을 설립할 예정이다. USGS에 따르면 전 세계 리튬 매장량 중 현재 기술로 당장 사용 가능한 리튬(2200만t) 보유량을 따졌을 때, 칠레가 세계 1위 보유국(920만t, 약 42%)이다. 같은 기준으로 봤을 때 220만t(약 10%)이 매장돼 있는 아르헨티나에선 지난달 라리오하주(州) 정부가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채굴권을 정지시켰다. 라리오하주는 리튬 매장량이 특히 풍부하다고 알려진 지역으로, 이 나라에선 지하자원 소유권을 주 정부가 가지고 있다.

사용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매장량으로만 따졌을 때, 세계 최대 리튬 매장국은 볼리비아(2100만t)다. 볼리비아는 좌파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집권하던 2008년 이미 리튬을 국유화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자원 민족주의'가 해당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리튬을 틀어쥔 이들 국가의 기술력에 한계가 있는데, 외국 투자가 줄어들면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단 우려다. 비엔아메리카스는 "무리한 국유화를 추진하면 외국 기업들이 줄소송을 걸 수 있다"면서 "리튬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고 싶은 중남미 국가라면 민간 부문의 기술·자본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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