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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前주일대사 "정치 훼방만 없으면 한·일 관계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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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본 한국대사를 지낸 강창일 전 의원은 한ㆍ일 관계의 개선 방안에 대해 “외교에는 100% 승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명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0일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지난해 10월 20일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강 전 의원은 1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 정상간 셔틀외교를 제외한 경제 등 양국간 전 분야는 이미 잘 돌아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이제 정말 한ㆍ일 관계를 정치로 활용하려는 정치인들만 훼방을 놓지 않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강 전 의원은 최근 한ㆍ일 관계에 대한 자신의 논문 8편을 모은 논문집  『근현대 한국과 일본』을 출간했다. 그는 “지금의 갈등은 한ㆍ일이 가진 각자의 상식이 충돌하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일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며 “지피지기(知彼知己)와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있어야 최소한 일본의 계속된 망언 등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ㆍ일 관계 경색이 풀리지 않는 이유가 뭔가.
“솔직히 수출규제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ㆍGSOMIA) 문제는 이제 껍데기만 남았을 정도로 전 분야가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영토 문제를 포함한 역사 문제는 정서적 영역이라 1000년, 2000년이 지나도 잘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와 외교에선 서로 명분을 줘야 한다. 100% 승리가 존재할 수 없는 외교에서 정치 논리로 완벽하게 이기겠다고만 하는 건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정치가 관계 개선을 막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사실 2021년 7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 때 일본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기로 양국이 합의했다. 문 전 대통령은 물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일본 총리도 동의했지만,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스가 총리가 사실상의 실권자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최종 ‘사인’을 받지 못하면서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2019년 6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6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ㆍ일 정상은 분명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 기시다 총리도 의지가 있지만, 아직 일본에서 ‘아베파’의 입김이 크다. 대사 시절 일본 기업과 깊은 얘기를 나눴는데, ‘강제 연행(강제징용)’ 등 정치적 분야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그들도 최소한 임금 미지급 등에 대해선 사과와 보상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그걸 아베 내각이 정치적 계산으로 못하게 했던 거다.”

강 전 의원은 역사학자 출신이다. 4선 국회의원으로 한ㆍ일의원연맹 간사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1월 대표적 지일파(知日派)인 그를 주일대사에 임명했지만, 관계 정상화를 이루지 못했다.

주일본 한국대사를 지냈던 강창일 전 의원이 최근 출간한 논문집. 책에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일본 대륙낭인의 한반도 침략 △근대 한ㆍ일 간의 상호인식 △일본의 조선 침략과 지배의 원리 △일제의 조선지배정책 △중일 전쟁 이후, 일제의 조선인 군사 동원 △‘친일파’의 형성과 해방 이후 재등장 △일본의 망언은 왜 계속되는가 등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한 8편의 논문이 담겼다.

주일본 한국대사를 지냈던 강창일 전 의원이 최근 출간한 논문집. 책에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일본 대륙낭인의 한반도 침략 △근대 한ㆍ일 간의 상호인식 △일본의 조선 침략과 지배의 원리 △일제의 조선지배정책 △중일 전쟁 이후, 일제의 조선인 군사 동원 △‘친일파’의 형성과 해방 이후 재등장 △일본의 망언은 왜 계속되는가 등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한 8편의 논문이 담겼다.

결국 한ㆍ일 양국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싸움을 하려면 상대를 그저 감정적으로 ‘나쁜 놈’이라고만 해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 특히 일본에 의존해 경제성장을 추진했던 과거와 달리 한국이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면서 한ㆍ일 관계를 끊어버려도 된다는 식의 인식도 적지 않다. 여기에 정치권도 친일ㆍ반일 프레임으로 이를 활용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한ㆍ일 관계는 반드시 좋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한ㆍ일이 가까워야 하는 이유는 뭔가.
“가장 가까운 옆 나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문화적ㆍ인종적으로도 가까워서 두 민족이 손을 잡으면 시너지를 낼 분야가 많다. 특히 미국의 세계 전략의 측면에서 남방으로는 미국·일본·호주·인도 중심의 쿼드(Quad)가, 북방으로는 중국을 직접 견제하는 의미의 한ㆍ미ㆍ일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ㆍ일의 기업과 국민들 모두 이러한 요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한ㆍ일 정상이 직접 만나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강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치며 “상대적으로 친일 프레임에 대한 부담이 적은 진보 정부 때 욕을 먹더라도 마무리를 지었어야 했고 일본 측도 이를 알고 있었다”며 “주일대사로 있는 기간 양국 관계 개선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회한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손을 잡은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손을 잡은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양국의 실무선에서는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며 ‘씨’를 뿌려놨으니 윤석열 정부가 조급한 성과주의에 쫓기지 말고 국민들을 잘 설득해 가며 관계 개선의 ‘열매’를 맺게 되길 기대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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