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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마다 온 환율 '1300원', 8개월 만에 또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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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안정을 찾은 줄 알았던 원화값이 ‘킹달러’ 여파로 다시 주저앉았다. 미국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두 달 만에 장중 1300원 선을 뚫었다. 물가 상승 우려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위원이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탓이다.

또 떨어진 원화값에 ‘구두개입’까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가치는 하루 전 14.7원 내린(환율은 상승) 1299.5원에 마감했다. 원화값으로는 연중 최저치다. 장중 1303.8원까지 갔는데 1300원 선 돌파는 지난해 12월 20일 이후 두 달만에 처음이다.

원화가치는 미국이 빠르게 금리를 올리던 지난해 6월 23일(1301.8원) 1300원대에 진입한 이후 1400원대까지 갔다. 최근 1200원대로 복귀하며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미국이 추가 긴축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면서 외환시장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외환당국 움직임도 바빠졌다. 이날 오후 원화가치가 장중 1303원대까지 내려가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환율 움직임이 과도한 것 같다”며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후 하락세가 멈추면서 시장 마감 때 1200원대를 간신히 지켰다. 하지만 달러 강세 흐름에 속도가 붙었기 때문에 1300원대로 다시 가는 건 시간문제다.

인플레 우려에 ‘빅스텝’ 가능성도

미국 고용시장의 활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지피 루브(엔진오일 교환 브랜드) 매장 앞에 ‘직원 모집 중’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고용시장의 활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지피 루브(엔진오일 교환 브랜드) 매장 앞에 ‘직원 모집 중’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외환시장이 다시 불안해진 건 미국 물가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3.0% 오르며, 지난해 1월(4.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예상치(1.9%)보다 1%포인트 높았다. 16일 발표된 지난달 생산자 물가 지수(PPI)도 전년 대비 6.0% 오르며 예상치(5.4%)를 상회했다. 같은 날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주간 신규 실업보험 청구자 수는 전주보다 1000명 감소한 19만4000명으로 나왔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 20만 명보다 적은 수치로, 그만큼 고용 시장이 좋다는 의미다.

소비력이 늘고 생산자 물가가 오르고 고용이 좋으면, Fed가 기준금리 인상에 가장 결정적으로 참고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다시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Fed 내 ‘매파(통화 긴축을 지지하는 사람)’로 분류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다시 ‘빅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밟아야 한다는 강경 발언이 나왔다.

16일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지난 회의에서 0.5%포인트 금리 인상의 강력한 근거를 봤다”며 “3월 인상 폭에 대해서 언급하기에 너무 이르지만, 0.25%포인트 인상에 얽매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도 “지난 회의에서 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주장했다”며 3월 빅스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연은 인사들의 강경 발언 이후인 17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패드 워치는 현재 연 4.5~4.75%인 미국 기준금리가 3월 5~5.25%로 0.5%포인트 올라갈 확률이 18.1%라고 밝혔다. 전일 조사(12.2%) 대비 상승했다. 빅스텝 가능성에 표를 던진 전문가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경제위기’ 때마다 환율 1300원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원ㆍ달러 환율 1300원은 ‘경제위기’ 바로미터로 불린다. 실제 과거 원화가치가 1300원대에 진입한 건 지난해를 빼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1년 카드 사태와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정도다. 당시 원화가치 하락은 외국인 자본 추가 이탈, 수입 물가 급등 등 문제를 야기했다.

한국은행이 미국을 따라 금리를 막무가내로 올리기 어려운 점도 외환시장 불안을 더 부추기는 요인이다. 국내 경기 침체 가능성, 부동산ㆍ가계부채 문제 때문이다. 현재 최대 1.25%포인트인 한·미 금리 차는 미국 기준금리가 예상대로 올라가면 상반기 2%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다만 원화가치 하락이 추세적으로 이어지긴 아직 힘들다는 분석도 많다. 하반기로 갈수록 미국의 물가 상승 압력이 낮아질 가능성이 큰 데다, 중국 리오프닝(경제 재개)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달러 가치가 다시 낮아질 수 있어서다. 김효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리오프닝으로 인한 소비 회복이 아직 지표로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설비투자 및 소비 회복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중국의 리오프닝은 한국 수출에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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