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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명쾌한 노력없는 흔쾌한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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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원팀'으로 반도체 팍팍 밀어주는데
이익 급감 SK하이닉스 과다 성과급
이런 모순 납득할 국민 얼마나 될까

'원팀'으로 반도체 팍팍 밀어주는데 #이익 급감 SK하이닉스 성과급 잔치 #이런 모순 납득할 국민 얼마나 될까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 잔치' 행태를 비판했다.

이자 장사로 손쉽게 수익을 내고도 임직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이유에서다.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 "국민들이 위화감을 느낀다"란 말도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즉각 "은행권 성과보수체계를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은행들은 전전긍긍한다. 국민은 속 시원해한다. 은행들이 임직원에게 뿌린 성과급은 기본급의 300~400%라 한다.

그런데 정조준 당할 곳이 은행뿐일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4일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기본공제율을 8%에서 15%로 높이는 반도체 특별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올해 신규 투자 공제율을 4%에서 10%로 늘리기 때문에 최대 25~35% 공제가 적용된다.

윤 대통령은 사라졌던 반도체 특화단지 인프라 예산 1000억 원도 되살렸다. 지난 1일에는 SK 반도체 웨이퍼 사업장을 찾아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경상북도 구미시의 SK실트론을 방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실리콘 웨이퍼 생산시설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경상북도 구미시의 SK실트론을 방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실리콘 웨이퍼 생산시설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다수 언론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도체를 팍팍 밀어주자"고 힘을 실어준다. 나라 전체가 '원 팀'으로 파격적 후방 지원을 한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공공재가 됐다.

여기에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반대할 명분도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지난 3일 SK하이닉스는 전 임직원에게 기본급의 82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연봉의 41%다. 최소 수 천만원, 많게는 수 억원이다. 일반 직장인들로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엄청난 규모다.

돈 많이 번 회사가 고생한 직원에게 돈 푸는 거라면 문제없다. 아니 칭찬받을 일이다.

목표치를 뛰어넘은 삼성전자(기본급의 1000%)가 그렇다. 비난을 받긴 하지만 4대 금융지주사도 사상 최대 이익을 얻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이 무려 1조7000억원을 넘었다. 10년 만의 분기 적자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초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받았던 때와 비교하면 성과급을 18%가량 덜 받은 것이라지만, 연간 영업이익과 순이익 감소 폭(-43.5%, -74.6%)을 생각하면 '820% 성과급'이란 숫자에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올해 반도체 경기는 악화일로다. 회사 측은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정해진 절차에 따른 것이란다.

하지만 정부에 온갖 혜택을 요구하고 또 누리면서, 성과도 전망도 암울한 회사가 820% 잔치를 벌이는 걸 납득할 국민은 얼마나 될까. "꿩 먹고 알 먹는다"는 비판이 틀린 걸까. 300~400%에 몰매를 맞는 은행 직원들은 안 억울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2월 14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를 찾아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언을 청취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2월 14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를 찾아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언을 청취했다. 뉴스1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미국·일본 정부는 반도체 전쟁에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에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은 그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의 처신이다.

인텔은 분기별 성과급, 연간 성과급 지급을 모두 중단했다. 오히려 임금을 CEO 25%, 임직원 10~15% 깎았다. '반도체 보릿고개'를 극복하려는 최소한의 자구 노력이다. 마이크론·퀄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18일 다보스포럼 참석차 스위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 CEO와의 오찬' 행사에서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다보스포럼 참석차 스위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 CEO와의 오찬' 행사에서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왕국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의 대표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도 최고 실적을 올렸지만 성과급을 200~300%로 억제했다.

일부에선 한국의 고물가, 그리고 인재 유출 우려를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미국·일본이라고 다를 게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명쾌한 노력 없이는 흔쾌한 지원이 있을 수 없다. 지극히 상식적 얘기다.

하기야 연봉 4000만 원 아들이 50억원의 구린 퇴직금을 받아도 따로만 살면 권력자 아버지는 무죄가 되는 어이없는 세상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써 달라는 기부금 받아 갈비집 가고 홈쇼핑 해도 국회의원 신분 유지하며 활짝 웃는, 또 그걸 두고 야당 대표가 "얼마나 억울했을까"라고 거드는 요지경 세상이긴 하다.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수령한 데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왼쪽).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벌금형에 그쳐 국회의원직이 유지된 뒤 미소 짓는 모습(오른쪽). 뉴시스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수령한 데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왼쪽).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벌금형에 그쳐 국회의원직이 유지된 뒤 미소 짓는 모습(오른쪽). 뉴시스

속이 뒤집어진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희망이자 온 국민의 성원을 받는 우리 기업의 모습은 이들의 몰상식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