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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김명수 대법원의 초라한 레거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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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chief에디터

고정애 chief에디터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17년 9월 이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다섯 번 했는데 매번 김명수 대법원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2020년 7월엔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수장으로서 부끄러운 줄 아시오. 사법사에 어떤 대법원장으로 기록될 것인지 두렵지도 않습니까”라고 했다. 며칠 전에도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는 독립성을 잃고 행정부의 시녀가 되고 정치판이 됐다”고 성토했다. 이어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사법부의 파벌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능력과 관계없이 요직에 발탁했다”며 “여러 차례 거짓말과 부적절한 행동으로 사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윤미향·김학의 판결 기이하지만 #못지 않게 전체 재판의 질·양 문제 #자체 노력 없이 법관 늘려달라고만

 판사 출신이라 내부 사정을 안다 해도 사법부 수장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이례적이다. 과도한가. 아니다. 지금껏 논란의 판결과 의문의 행태가 빈번하게 반복돼 온 걸 보면 말이다.

 최근에도 있었다. 곽상도 전 의원 관련 50억원 사건이야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고 치자. 윤미향 의원 사건을 두고 1심 재판부가 공익법인의 활동비를 개인 계좌에 넣어두고 증빙 없이 쓴 것까지 용인한 건 너무했다. 앞으론 시민단체가 아무 데나 돈을 넣어뒀다가 쓰고, 그럴듯한 용처만 적어두면 된다는 신호 아닌가.

 김학의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에 대한 판단도 괴이했다. 수사가 이뤄질 게 확실하기 때문에(아니었다), 적법하지 않은 수사를 해도 된다는 법리였다. 검사가 ‘나쁜 놈’이라고 믿으면 불법적으로 수사해도 된다는 말인가.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해당 판사가 무죄라고 믿고 법리를 세운 것 같다”고 개탄했다.

 이런 판결을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게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의 진정한 문제는 이런 돌출적 재판 아래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재판의 실패’다.

 “김 대법원장이 대단히 화가 났는데, 틀린 말이 없어서 반박할 수도 없어서”(법원 관계자)란 평가를 받은 특허법원 소속 이형근 고법 판사의 이달 초 기고문에 잘 담겨 있다. 민·형사 사건의 재판 통계를 분석하니 재판의 양과 질 모두 떨어졌고, 특히 오래되고 어려운 사건이 더 쌓였다는 내용이다. 이 판사는 “2018년 이후 상황이 나빠졌을 때 대처했더라면 달라졌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며 “최종 사법행정권자가 특별히 재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건 재판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었다고 본 건가”라고 물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22년 4월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22년 4월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이 재판 아닌 딴 일에 신경쓴 게 아니냐는 질문일까. 만일 그랬다면 무엇이었을까. 주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파벌의 수장 역할이었을까. 실제 법원 안팎에선 김 대법원장이 내세우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일선 판사들이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가 ‘김명수 코드 인사’의 통로였고, 이로 인해 법원 내 사기가 떨어졌으며 일 좀 한다는 판사들이 떠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시 이 판사의 말이다. “대법원장은 임기 초부터 ‘좋은 재판’을 주장했다.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해마다 사건 처리를 덜 하며 미제를 남기고, 처리 기간이 길어지며 오래되고 복잡한 사건은 미래의 사법부에 미루고, 쉬운 사건 위주로 처리하는 재판은 아닐 것이다. 사법부는 좋은 재판에 실패했고,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에서 말하는 정의(쉬운 사건 위주 처리의 방지)도 구현하지 못했으며, 그 실패의 정도는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다.”

 이 정도였다면 김 대법원장은 스스로 돌아봐야 했다. 제도도 점검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손쉬운, 동시에 염치없는 방식을 택했다. 세금에 의탁한 것이다. 향후 5년간 법관 정원을 370명으로 늘려 달라고 했다. 6년간 대법관 4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입법 의견도 냈다. 그러고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국회에서 “사건 처리 건수 늘리고 사기 진작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9월로 끝난다. 그의 레거시는 어떻게 기록될까. 두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