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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 오신 것 같다” AI로 되찾은 젊은 전쟁 영웅들의 얼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잘생기셨었네.”

14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씨가 액자 속에 담긴 아버지 사진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 속 진씨 아버지는 군복 차림이었고, 가슴엔 훈장이 달려 있었다.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매슈 리지웨이 장군, 백선엽 장군과 함께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전쟁 4대 영웅으로 선정된 고 김동석 대령이었다. 김 대령은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과정에서 주요 첩보를 입수하는 등 맹활약했다. ‘첩보부대의 전설’이라는 수식도 붙었다.

진씨가 이날 마주한 사진 속 아버지는 참전 직후 모습 그대로인,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흑백사진이나 흐릿한 화질의 옛날 사진은 아닌, 눈가의 잔주름과 눈썹 한 올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한 컬러사진이었다.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로 복원한 사진이어서다. 진씨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청년 시절 아버지가 돌아온 것처럼 너무 생생하고 멋있게 나왔다. 엄하지만 정도 있고 눈물도 많았었던 젊은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되돌린 영웅의 눈빛

14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가수 진미령씨가 인공지능(AI)가 복원한 아버지 고 김동석 대령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성균관대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빛바랜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던 6·25전쟁 참전 영웅들의 젊은 시절을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컬러사진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진 최서인 기자

14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가수 진미령씨가 인공지능(AI)가 복원한 아버지 고 김동석 대령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성균관대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빛바랜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던 6·25전쟁 참전 영웅들의 젊은 시절을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컬러사진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진 최서인 기자

6·25 한국전쟁 참전 영웅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 AI 기술을 통해 컬러 사진으로 복원된다. 성균관대(총장 유지범)와 국가보훈처는 이날 ‘불멸의 6ㆍ25전쟁 영웅, 청년으로 돌아오다’라는 제목의 프로젝트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행사에는 진씨와 같은 참전 영웅들의 후손들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신민식 자생의료재단 사회공헌위원장,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국가 유공자 후손들에겐 먼저 복원작업을 마친 고해상도 컬러 사진들이 전달됐다.

흐릿한 흑백사진으로만 봤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생생한 컬러 사진으로 마주한 진씨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과거 추억들을 술술 풀어냈다. 그는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좀 무서웠다. 아무래도 첩보 부대에 계시다 보니 눈빛이 남달랐고 인상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며 “베개 밑에도 칼, 식탁 휴지갑 밑에도 칼이 있었는데, 늘 긴장하신 모습이라 마음이 아팠었다”고 회상했다. 김 대령은 노래를 하겠다며 가수의 길을 택한 진씨의 결정을 반대했지만, 뒤에서는 늘 딸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진씨는 “아버지가 부드러운 분이란 걸 나이가 드셔서야 알았다. 이렇게 사진을 통해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니 곁에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던 아쉬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다”고 복원 사진을 본 소감을 말했다.

흥남철수 작전을 주도해 10만명의 피난민을 구한 에드워드 고 포니 대령의 증손자 벤자민 포니도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복원된 사진을 바라보며 “꼭 살아있는 것 같다”고 놀라워 했다. 이어 “증조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번영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한 것에 놀라실 것 같다. 전쟁영웅들의 위상을 이렇게 보전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얼굴 데이터에서 값 도출…국가유공자 후손의 기술로 복원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6.25참전영웅 AI기술활용 복원사업 업무협약식에서 신민식 자생의료재단 사회공헌위원장이 6.25 참전유공자 故에드워드 포니의 증손자 벤자민 포니에게 AI로 복원한 영웅의 사진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6.25참전영웅 AI기술활용 복원사업 업무협약식에서 신민식 자생의료재단 사회공헌위원장이 6.25 참전유공자 故에드워드 포니의 증손자 벤자민 포니에게 AI로 복원한 영웅의 사진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우사이먼 성균관대 인공지능학과 교수와 그의 팀원들이다. 기존의 사진 복원은 사람이 포토샵 등 툴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진행해 왔다. 반면 이번 프로젝트에 적용된 인공지능 얼굴 복원기술(GFP-GAN) 및 안면 복원 기술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이전에 학습된 수만 건의 얼굴 데이터에서 값을 도출해 눈·코·입과 윤곽선 정보 등을 계산하고 재현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해상도가 떨어지거나 많이 손상된 사진도 복원이 가능하다.

인공지능학과와 소프트웨어학과 연구진 및 학생들은 지난해 3월부터 해당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 기술보다 더 자연스럽게, 더 선명하게 윤곽을 살릴 수 있는 기법을 만들기 위해 9개월 동안 매달렸다. 완성된 프로그램은 약 5분이면 과거 얼굴을 복원할 수 있다. 자생의료재단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는 추후 별도 전시를 진행하고 사진첩도 발간할 예정이다.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모습이 담긴 원본 사진(좌)과 인공지능 얼굴 복원기술을 적용해 복원된 사진(우). 사진 국가보훈처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모습이 담긴 원본 사진(좌)과 인공지능 얼굴 복원기술을 적용해 복원된 사진(우). 사진 국가보훈처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우 교수가 국가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국가유공자인 우 교수의 할아버지는 1946년 복무 수행 도중 33세의 나이로 순직해 현재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우 교수의 아버지가 태중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우 교수는 “우연히 온 기회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잊고 있던 할아버지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았다”며 “돌고 돌아서 다시 손자의 기술로 할아버지와 같은 유공자와 유가족 분들께 작은 기쁨이나마 드릴 수 있다는 게 큰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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